죽죽선녀를 만나다 / 박정애 지음문학사상사 발행ㆍ8,000원
어설픈 사투리만큼 ‘촌스러운(?)’ 것도 없다. 해서 이왕 쓸 양이면 막가야 하는데, 박정애씨의 사투리는 그런 면에서 우악스러울 만치 ‘본토적’이고 거침없다. 그는 경북 내륙의 ‘촌스러운’ 사투리가 기억으로서의 자기 삶과 문학의 모국어라고 했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 ‘죽죽선녀를 만나다’는 변방의 여성이 변방의 삶을 무작스러운 변방의 언어로 풀어낸 보기 드문 페미니즘 서사다.
경북 청도. 그 완고한 동네에서도 버스로 1시간을 달려 재를 넘고, 다시 30분을 걸어 또 재를 넘어야 닿는 매전면 두곡동 죽산 박씨 집성촌이 그의 고향이다. 그러니 형님이 과수원에 방앗간까지 상속 받는 터에, 그의 선친인 동생은 논 두 마지기에 감지덕지하던 장자상속의 전통도 당연시 됐던가 보다.
노동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재던 시절, 남존여비의 족쇄는 오죽했을까. “어머니가 장남 낳고 결핵성뇌막염에 걸렸어요. 시댁에서는 며느리를 내쳤는데 외가에서 내리 3년 딸 간병을 한 거죠.”
고관절이 굳어 다리를 절며 퇴원한 어머니는, 알곡을 턴지 엊그제다 싶은 때부터 쌀 빌리러 다니기 바쁜 살림에도 딸 셋을 더 낳았고(막내딸 낳은 뒤에는 미역국도 못 드셨다고…), 그 장녀가 바로 작가 박정애씨다. 자식들 공부를 위해 가족은, 작가가 10살 되던 해에 대구로 나오지만 이번엔 팍팍한 도시 빈민의 삶이 그들을 기다린다.
다행히 작가는 학력고사를 통한 ‘역동적 계급이동’에 성공, 서울 강남의 부잣집에서 과외도 한다. 평론가 최혜실(경희대 교수)씨는 “90년대 페미니즘 계열의 대다수 여성 작가들이 서울 중산층 여성의 담론에 머문 반면, 박정애는 그의 다양한 삶의 체험을 통해 페미니즘 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자폐적이기까지 한 보편의 관념성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표제작 ‘죽죽선녀를 만나다’는 아들이라면 장땡으로 치는 동네의 가부장적 폭력에서 딸들이 안고 사는 마음 깊은 곳의 상처와 그 상처들을 치유해가는 이야기다.
어린 언니는 홑이불에 월경 자국을 묻히고 팬티를 방치해 엄마로부터 모진 꾸지람을 들은 뒤 목을 매고, 할머니는 언니의 주검을 두고 ‘가시나가 틀리뭇다’며 서답의 금기를 되뇐다. 동생은 자라 결혼을 하지만 임신우울증에다 남성혐오증까지 겹쳐 시난고난. 뒤늦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게 되고, 그 과정에 엄마의 모짊의 원인을 전해 듣고 엄마의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불을 찾아서’는 ‘사십 사 년 죽어라 긁어댔는데, 씨발 꽝’인 삶에다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한 독신의 연구보조원 ‘나’가 화자.
무작정 떠난 여행지, 경북 안동의 한 동네에서 ‘방 뜨신 거 하나는 진짜배기’인 민박집 할머니를 만나 ‘열 아홉 청상으로 살아 쎄(혀)를 물고 죽을 라던’ 외롭고 추운 인생사를 듣는다.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추웠던 삶을 되돌아보고 성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책으로 묶인 8편의 단편들의 주인공들은 삶이 누추하고 아픈 만큼 어법 역시 원초적이고 노골적이다. 결코 상처만 드러낸 채 헐떡이다 주저앉아버리는 법이 없다. 기어이 고통에 저항하고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넘어선다.
자칫 그 입담이 상처마저 희화화하고, 건강한 치유력이 작위적으로 읽힐 만큼. 작가가 소설에서 하려는 말을 주인공들이 나서서 너무 직설적으로 쏟아놓은 것 아니냐고, 아쉬운 듯 물었다. 그 대답이 “제 성격이 그래요. 워낙 급하고, 내숭이랑은 거리가 멀어 놔서…”다. 그러고 보니 이 역시 변방의 미덕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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