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아모스 오즈 지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만큼, 깊게 읽히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히브리 문학의 거장인 이스라엘의 아모스 오즈다. 그가 1987년 펴내 20여개 언어로 번역되고, 이듬해 프랑스 ‘페미나상’을 거머쥔 소설 ‘블랙박스’가 출간됐다.
상대에게서 받은 상처를 안고 사는, 그래서 서로를 경멸하다시피 하는, 이혼한지 7년 된 부부가 있다. 어느 날 아내였던 여자의 편지가 남편이었던 남자에게 배달된다. 자신이 키우던 아들이 말썽을 부려 퇴학위기에 몰렸으니 도와달라는 내용. 두 사람의 증오에 찬 편지들이 오가면서 감춰졌던 상처들까지 들춰진다.
둘은 서로가 받은 상처만큼 상대에게 준 상처도 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재결합? 아니다. 아내는 이미 재혼해 딸을 둔 상태. 두 사람의 갈등에는 재혼남인 우파 시오니스트, 아들 등 주변인들의 애증과 갈등이 중첩된다.
작가는 서로가 주고받는 편지와 메모 등을 통해 ‘삶의 블랙박스’를 분석하고 해독한다. ‘더 높은 열망’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는, 삶의 능력마저 잃어가는 사람들에 대해 성찰하고 연민한다.
소설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공존 운동에 열성인 작가의 이념적 편린들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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