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과거 청산 프로그램이 '과거지향적 개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흔들리고 있다. 정부·여당은 이 같은 비판이 야당과 보수층 뿐만 아니라 여권 내부에서조차 강하게 제기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386 정치인들의 경제 마인드 부족을 질타한 바 있는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20일 "미래를 생각하는 정책을 써야지 왜 과거지향적인 정책을 쓰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제도를 언급하던 중에 나온 말이었지만 그의 발언은 곧바로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거부반응과 맞물려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과거사를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의 출발점"이라며 "정부의 핵심인사가 이를 폄하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한 중진의원은 "적절하진 않았지만 과거에만 매달린다는 비판은 생각해볼 부분도 있다"고 다소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그는 김희선 의원의 군 장성 '물갈이론'을 예로 들며 "섣불리 접근했다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과거사 바로잡기'라는 취지마저 바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성들 가운데 5공, 6공 때 군에 복무하지 않은 사람이 단 한명도 없을 텐데 이 사실만을 근거로 물갈이론을 제기함으로써 결국 군부의 감정적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었다.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친일진상규명법도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해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경제나 안보문제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정부가 너무 과거지향적이다"라고 비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조사대상에 포함된 것을 겨냥한 얘기지만 과거지향적이라는 비판을 받자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은 21일 "정 원한다면 박 전 대통령을 조사대상에서 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공방이 가열돼 입법 취지가 왜곡되는 것을 피하자는 뜻으로 고육지책을 내놓은 것이다.
2002년 대선과정이 포함된 불법정치자금국고환수법이나 재산 등록시 취득 경위를 밝히도록 한 공직자윤리법 등은 취지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일각에서 "과거에 얽매인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어 입법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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