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같으면 지하철 전동차들이 첫 출발을 위해 한창 시동을 걸고 있어야 할 21일 새벽4시께 서울 동대문구 용답동 군자 차량기지 교육원 3층. 수 차례의 정회와 속회를 거듭하던 서울지하철공사 노사의 밤샘 교섭이 입장차만 확인한 채 결렬된 순간, 참석자들의 얼굴에는 묘한 표정이 흘렀다. 과거 지하철 노사 협상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고성과 삿대질, 긴장감에 이은 안타까움 보다는 후련하다는 듯한 표정이 눈에 띄기도 했다.이에 앞서 'D-데이'를 하루 남긴 20일 오후 4시 서울시 기자실. 서울시가 내놓은 파업대책은 눈을 의심해야 할 정도로 엉뚱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파업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이 파업을 전제로 한 비상운영 계획만 즐비했기 때문이다. 시는 "파업을 해도 비상운영계획이 가동되기 때문에 지하철 운행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수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파업용 대책과 협상'의 흔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하철공사는 협상 결렬 직전까지도 노조측에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않았다. 대신 교섭에 앞서 노동부와 지방노동위원회 등에 직권중재를 수차례 요청하다 지노위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당사자간 협상을 통한 사태 해결에는 애초에 뜻이 없었던 셈이다.
노조측 역시 수도권 시민들의 발을 담보로 경영 여건상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조건을 내세웠다는 점에서는 비난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04년 서울지하철 노사협상은 '파업을 하기 위한 통과제의'였다고 규정하고 싶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자력협상을 통한 해결을 포기한 집단에는 외부의 힘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그 채찍의 강도는 시민들이 결정할 몫이다.
/전태훤 사회2부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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