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언니 자꾸 늙어가는 것 같아요.”지난 주말 SBS ‘파리의 연인’을 함께 보던 아홉 살 난 딸 아이가 김정은의 얼굴 클로즈 업 장면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어쭈, 이 녀석이 벌써 얼굴을 따져? 같잖다는 듯 피식 웃다가 화면을 유심히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얼굴이 무척 상해 있었다.
기주 아버지(김성원)에게 불려가 ‘삼류’ 운운하는 수모를 당하고, 문윤아(오주은) 모녀에 시달리고, 수혁(이동건)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어 가슴 아파하는 태영 역의 김정은. 눈물이 마를 새 없었던 이날 연기의 흐름을 감안하더라도, 축 늘어진 피부에 눈 밑에 주름까지 진 그녀의 얼굴은 20대의 한창 잘 나가는 톱스타로, 평소 건강미를 자랑하던 연예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안쓰러웠다.
도대체 누가 그녀를 늙게 했을까.
김정은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휴, 지난 주요? 목요일부터 사흘 밤을 꼬박 새고, 일요일 5시까지 촬영해서 겨우 방송했어요.
저희도 무척 걱정했는데, 방송 보고 그 정도라도 나온 게 다행이라고 했어요.” 이런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평소 건강만은 자신했던 김정은이 요즘은 약으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피로에는 홍삼이 그만이래요. 위가 좋지 않아 아침마다 어머니께서 챙겨주시는 선식 꼬박꼬박 챙겨 먹고요, 매실 환약도 먹고요, 또 촬영 없을 때 1주일에 한, 두 번은 병원에 가서 영양제 맞으며 버티고 있어요.”
‘파리의 연인’뿐이 아니다. 방송 일을 코 앞에 두고 나온 대본(때로는 완성본도 아닌 쪽대본이다!), 연이은 밤샘으로 비몽사몽간에 카메라 앞에 서는 연기자…. 드라마 제작현장을 찾아가 보면, 열악하기 그지없는 현실에 기가 질린다.
그래도 이런 환경에서 만들어진 드라마들이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 걸 두고, 시청자 반응을 그때그때 캐치해 반영하는 것이 한국 드라마의 경쟁력(?)이라고 강변하는 웃지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시청률 50%을 넘보니 그만 아니냐고? 혹시 이렇게 생각한다면, ‘파리의 연인’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박신양의 하소연을 들려주고 싶다. “드라마 제작환경이 너무 후져요. 너무 비인간적이어서 다시 드라마를 하겠다고 선뜻 말할 수 없어요.”
“우리 이렇게도 잘 해왔잖아” 하면서 연기자들에게, 스태프에게 지옥같은 환경을 강요하며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얼마나 갈까. 방송사나 제작사나 시청률 50%에 환호하기 전에, 뜨거운 호응을 보내준 고마운 시청자들에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찍어낸 드라마를 보여줘야 하는 현실을 뼈아프게 되돌아봐야 할 때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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