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정부·여당과의 '사상 투쟁'을 선언했다.전당대회를 마친 한나라당은 21일 여권의 개혁공세에 맞설 카드로 이념 문제를 꺼내 들었다. 간첩에 대한 민주화 인사 인정논란, 북한 경비정 NLL 침범, 친일진상규명법 개정 등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과 우리당이 불온한 사상적 의도로 일으킨 혼란"이라는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여권을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을 합리적인 건전 보수이자 혼란을 수습할 대안세력으로 부각시키겠다는 속셈이다.
박근혜 대표는 이날 밤 삼성동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찬을 함께 하며 "정부가 국가 정체성을 흔드는 상황이 계속되면 야당이 전면전을 선포해야 할 시기가 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간첩이 군사령관을 취조하는 나라면 볼장 다 본 게 아니냐"면서 "지금은 바닥이 흔들거려 야당이라도 버티고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줄곧 대여관계에서 상생과 인내를 강조해온 만큼, 이날 발언은 2기 임기를 맞아 강경노선으로 전환을 선언한 것이라는 관측을 낳았다.
이런 분위기는 이날 오전 열린 통외통·국방·행자 등 3개 상임위 소속 의원 연석회의에서도 선명하게 감지됐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노무현 정권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느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인정하느냐의 의문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경필 수석원내부대표도 "8·15 독립과 남한임시정부의 정통성까지 부정하고 현대사를 모두 뒤엎으려는 정부·여당에 맞서 사상 논쟁을 벌여 승리해야만 집권이 가능하다"고 가세했다. 김충환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이빨을 하나씩 뽑고, 투우에서 쓰는 침을 하나씩 둘씩 꽂아 자기 방어력을 없애려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전여옥 대변인도 "이제는 진보 세력을 검증할 차례"라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영남권 중진 의원들로부터 "진작부터 그런 방향으로 갔어야 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이념 공방에 휘말려 수구 이미지를 스스로 덧칠하는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 원내대표가 "색깔론이 아닌 근본적 문제 제기임을 여론과 언론이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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