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예술가가 많지만 오태석 선생님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그 중 으뜸이다. 영국 유학시절에 선생님 희곡집을 읽고, 또 읽었다. 그때마다 느꼈던 건 천재의 위대함과 글쓰기에 대한 외경심이었다. 영국에서 첫손가락 꼽히는 셰익스피어 통인 우리대학 석좌교수님은 그의 희곡집을 읽고 감탄 또 감탄. 그 중 '자전거'를 극작과 교재로 쓰셨다.한국말의 아름다움과 오태석 특유의 대사의 미학이 거의 사라진 영문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희곡적 구성과 상상력만으로도 콧대 센 외국인을 넉다운시켰다. 교수님은 뉴욕대에 초빙돼 가실 때도'자전거'를 교재로 쓰셨고, 그것도 모자라 독일에서 열린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 오태석의 목화극단을 기를 쓰고 초청하셨고, 내가 런던에서 연출한'태'를 보시면서도 그것이 원작을 신체연극으로 거의 탈바꿈시킨 무용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태석의 향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셨다. 그리고 내가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친필로 추천서를 써주셨다.'모자라는 제자 이지나를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2000년에 연출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항상 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진 적이 없었다. 오히려 못난 놈이 삐뚜로 나간다고, 절대 흉내도 못 낼게 뻔하니'나는 내 스타일을 개발해야지'하고 이것저것 하고 있는 형편이다. 주변에서 창작희곡을 써보라고 권유들 하지만, 오 선생님의 희곡을 읽은 이상 사실 자신이 없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 라는 말이 요즘처럼 다가오는 적이 없다. 영화, 방송드라마 등 각 분야에서 참 용감한 작가들이 많은 것 같아서다. 대중성이라는 그럴듯한 명분도 이제 그만 들었으면 한다. 대중의 격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화라는 말은 생명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화나 예술은 더 빠르게 진화한다.
/이지나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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