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오라버니! 얼마 전 당신의 아들 용수가 결혼을 했어요. 무엇이 그리 바쁘셨는지 서른다섯이라는 시퍼런 나이에 이 세상 마침표 하던 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절하라"던 삼촌들의 목메인 울음소리 앞에서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생전에 당신이 가르쳐준 닐리리맘보와 트위스트를 신나게 흔들어 대는 것으로 절을 대신했던 철부지였는데 말이네요.훤칠한 키에 검은 예복을 입고 하객을 맞는 조카의 모습이 그렇게 믿음직스럽고 대견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팔방미인 호걸 소리를 듣던 당신이 우뚝 서 계신것만 같아 코끝이 시큰해졌답니다.
용수가 서울에서 신접살림을 차리기까지 삼촌들의 힘도 컸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잘 자라준 그 아이가 더 없이 고맙고 측은해 보였지요. 그 기쁜 날 혹시라도 올케언니가 나타나지 않을까 사방을 두리번거려봤지만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않고 부모의 자리를 삼촌과 할머니가 지키는 것을 볼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답니다.
자식의 결혼식장에 오지 못하고 온 종일 숨어 우는 새처럼 울어야 했을 올케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지요. 젊은 나이가 아까워 우리쪽에서 먼저 보내줘야 한다던 아버지 말씀대로 서울로 돈벌이하러 간 올케언니는 감감무소식에 호적정리까지 하여 어디론가 떠났지요. 없는 형편에 병석에 누워있는 남편수발로 버거운 시어머니에게 어린 세 남매를 떠넘기고 말이네요.
맏자식 가슴에 묻고 눈물로 엄마아빠 없는 손자들 키워야 했던 시어머니의 아픈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그 생각을 하면 모멸감과 굴욕감에 괘씸하기 짝이 없군요.
하지만 한편으로 한 여자의 일생으로 보았을 때는 올케가 그렇게 가엾게 느껴질 수가 없네요.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고 말이죠.
어린 우리들을 버리고 간 사람이 무슨 엄마냐며 손을 내젓던 자식들이 성장하여 스스로 엄마를 찾아 왕래한다는 기쁜 소식도 들리더군요. 모두 결혼하여 자식들 낳고 이쁘게 살고 있거든요.
이제 오라버니도 올케언니 이해하시겠지요? 저 역시 그 가족이 행복하기만을 빌며 어디에서든 건강하시라고 전해 드려라 하고 조카들에게 슬쩍 말을 건네본답니다.
정겨운 이웃들은 "기만이가 살아있으면 지금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주 자랑에 동네가 떠나갈 거야"라고 말한답니다. 그만큼 평온하게 잘 살고 있다는 뜻이지요. 오라버니, 그 이쁜 가족을 하늘나라에서 지켜봐 주세요.
/김인석·경기 여주군 대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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