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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YS의 이기적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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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YS의 이기적 침묵

입력
2004.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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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런던에서 '침묵의 피아노 연주회'라는 행사가 열렸다. 헝가리 음악가가 연주하는 역설적 음악회였다. 수백명의 음악 애호가들이 베르가모의 '지리학적인 침묵' 등을 듣기 위해 숨을 죽였다. 피아니스트의 열광적 연주가 콘트라베이스, 플루트와 함께 삼중주를 이루었다. 고요한 연주회였다. 이름 그대로 침묵의 연주였다. 음악가들은 연주 흉내만 냈을 뿐이다.이 연주회는 TV 프로듀서가 기획한 사기극이었다. 연주회가 끝난 뒤 그 PD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보고자 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대중이 그렇게 어리석지만은 않다. 그 음악회의 많은 청중은 스스로 전위적 예술에 참여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

때로 침묵과 묵언은 깨달음에 이르는 내밀한 통로가 된다. 신비주의자나 종교적 구도자에게 침묵은 중요한 수행법이 돼 왔고, 시민사회에서는 묵비권이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는 보루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도한 침묵은 다변과 마찬가지로 어떤 의도를 드러내는 적극적 행위가 된다. 장 그르니에에 따르면 '침묵하는 것은 악과 협력하는 것이고, 망각을 장려하는 것'이다. 사기 연주회는 이런 침묵의 부정적 이미지를 깨우쳐 주었다.

많은 전직 대통령들이 침묵을 이용하고 있다. 침묵을 방패 삼아 역사를 호도하고 있다. 최규하 씨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1980년 신군부에 대통령직을 내준 역사적 진실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97년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은 전두환 씨는 지금까지 314억원만 납부했다. 1,000억원대의 비자금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측되나 거짓말로 버티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 에 '김대중 씨, 노태우 돈 받았다'라는 소제목이 있다. DJ는 노씨가 밝힐까 봐 겁에 질렸는지 20억원을 받았다고 먼저 발표했으나, 지금까지도 금액이 20억인지 200억인지 의혹이 있다는 내용이다. 몇 장을 넘기면 '노태우 구속' '전두환 구속'이 나온다. YS는 두 사람의 엄청난 부정축재가 드러나는 바람에 구속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5.18 특별법 제정 지시를 밝히는 강삼재 신한국당 총장의 기자회견 장면이 소개되고, '역사 바로 세우기로 제2의 건국'이라는 담화문이 실려 있다. 담화문은 웅변조로 끝을 맺고 있다. <…역사가 이 시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는 역사의 대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역사 바로 세우기'의 위업에 다 함께 나섭시다.>

그로부터 9년 뒤, 진실은 또 한번 요동을 친다. YS의 비자금 조성 혐의가 제기된 것이다. 최근 1,197억원의 안기부 예산을 총선에 전용했다는 신한국당 '안풍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그 거금을 YS의 돈으로 판단한 것이다. YS는 강삼재 씨가 "청와대 집무실에서 YS로부터 받았다"고 고백했을 때부터 "나는 말 안 한다면 안 한다"며 침묵을 지켰다.

재판부에 제출한 사유서에서도 "재임 중 돈을 준 일도, 받은 일도 없다"고 주장했다. YS는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면서 자신의 비자금만 정보기관의 차명계좌에 넣어두고, 또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것이 된다. 지금도 "말 안 할끼다"라는 침묵으로 버티고 있다.

전직 대통령 거의가 부정한 돈과 관련된 전과나 혐의가 있는 셈이다. 가장 명예로워야 할 윗물이 시정잡배와 다름없이 탐욕과 위선으로 혼탁하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서글프고 욕된 자화상이다. 간혹 청와대의 전직 대통령 식사 모임에 마음이 흔쾌하게 따라가지 않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엄혹한 독재시절 민주투쟁의 지도자이기도 했던 YS가 비자금에 대해 진실을 밝히기 바란다. 그는 개인적 축재를 하지 않고 정당에 주었다. 이 부분은 딴 사람들과 다르다. 이기적 침묵을 깨뜨림으로써 역사 바로 세우기를 명예롭게 마무리할 수 있다. 거기에 '악과 협력하지 않는' YS만의 길이 있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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