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낼 때마다, 아주 짧게 스쳐가는 영상처럼 여름에 얼음을 처음 보았던 때의 일이 떠오른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누군가 성남동에 있는 제빙공장 얘기를 했다. 공장에서 얼음을 얼려 꺼내는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을 잘 맞추어 가면 작은 얼음 한 덩어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산촌에서 자란 나는 그때까지 여름 얼음을 보지 못했다.학교가 끝난 다음 친구들과 우르르 제빙공장으로 달려갔다. 가서도 한 시간쯤 기다려 새하얀 얼음이 나오는 걸 보았다. 그 중 한 덩어리를 매우 진귀한 보석처럼 얻었다. 마음은 이것을 그대로 집에 가져가 할아버지한테도, 또 동생들한테도 자랑을 하고 싶은데 집이 멀어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것이었다.
"우추리? 우추리까지 가져가자면 두부 열 모 만한 걸, 그것도 그냥 가져가면 안되고, 햇볕이 바로 안 쬐게 가마니에 잘 싸서 가져가야 할 거다. 그래도 우추리까지 가면 두부 한 모 크기밖에 안 남을 걸."
언젠가 그 얘기를 하니 작은 아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 그때는 얼음이 바로 나오는 냉장고가 없었구나." 언제나 입을 다무는 쪽은 나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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