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차량들이 분주한 서울 도심에 장중한 무게를 가진 숲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숲은 도시가 발달하면서 대부분 산비탈로 쫓겨 가 구릉지나 평지에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숲 하면 산이 떠오른다. 그런 통념을 깨는 곳이 종묘 숲이다.여름이 다가오면서 한껏 녹음을 드리우는 종묘 숲은 갈참나무숲이다. 종묘라고 하면 기품있는 소나무가 더 잘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처음 조성할 당시에는 소나무가 꽤 있었나본데 산불로 인해 신위를 모신 건물이 소실될까 우려하여 담장 근처에는 집을 못 짓게 하고 담장 안 숲에서는 소나무를 베어냈다고 한다.
참나무류의 한 종인 갈참나무는 해발고가 낮은 평지에 주로 자란다. 참나무가 대개 그렇듯이 줄기나 수관이 주는 느낌은 거친 듯 부드럽다. 또한 짙은 녹색의 수관은 종묘 정전의 흑색 기와지붕이 풍기는 깔끔한 단순함과 어울려 장엄함의 깊이를 더해준다.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1995년12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16세기 이래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세계적으로 독특한 건축양식을 지녔으며 의례와 음악과 무용이 잘 조화된 전통의식과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인정받은 것이다.
종묘는 조선 왕조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듬해인 1395년에 완공되었다.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다. 종묘의 면적은 56,000여평에 달하는데 그 안에 정전을 비롯하여 영녕전, 전사청, 재실, 향대청, 공신당, 칠사당 등의 건물이 있다. 종묘에는 사가에 가묘(家廟)와 별묘(別廟)가 있듯이 정전(正殿)과 별전인 영녕전(永寧殿)이 나온다.
종로에서 정문까지는 느티나무의 숲이 터널을 이룬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향나무가 심어진 연못이 있고 오른 쪽으로 가면 향대청(香大廳 : 제사에 쓰는 향을 보관하던 곳)이 있다.
울창한 숲길을 지나면 일자로 길게 뻗은 한옥 건물이 있는데 이 곳이 바로 종묘의 정전이다. 그 앞을 지나서 좌측으로 좀 올라가면 정전보다는 약간 작은 영녕전이 나온다.
종묘의 건축 양식은 궁전이나 불사의 건축물처럼 화려하거나 장식적이지 않고 검소하고 단아하다. 종묘의 건축물은 한국의 일반 건축물과 같이 개별적으로 비대칭 구조를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대칭을 이룬다. 또한 의례 공간의 위계질서를 반영하여 정전과 영녕전의 기단과 처마, 지붕의 높이, 기둥의 굵기가 각각 다르다.
특히 건평이 1,270㎡의 정전은 서양 건축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유형의 건축물이다. 태실이 19칸에 달하고 정면이 매우 길고 수평을 강조한 독특한 형식의 건물 모습을 띠고 있다.
19위를 모두 서쪽으로부터 동으로 봉안하였기 때문에 길이가 101m에 달하는, 긴 일자형 단층 건물이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여러 칸을 지었던 것은 아니고, 대가 지나면서 사당이 부족할 때마다 4회에 걸쳐 증축된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종묘는 뉴욕 맨해턴의 중앙공원처럼 광대하지는 않으나 서울 한가운데 장중하고 울창한 숲을 갖고 있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임주훈ㆍ국립산림과학원 박사 forefire@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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