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우성이 돌아왔다. TV 드라마 ‘현정아 사랑해’(2002년) 이후 오랜 동안 소식이 들리지 않던 그가 송일곤 감독의 미스터리 스릴러 ‘거미숲’에서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로 돌아왔다.‘질투는 나의 힘’에서 지적인 연기를 보여준 문성근 말고도 충무로에 또 한명의 제대로 된 지성파 연기자가 있음을 상기시킨 연기였다.
‘거미숲’은 치명적인 폭행을 당한 뒤, 교통사고까지 당한 한 남자의 기억을 토대로 범인을 추적하는 작품이다. 범행 무대인 숲의 공포감, 섬세한 특수분장이 돋보이는 스타일 강한 영화다.
감우성은 좌절, 공포, 분노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로 영화 데뷔작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년)와 전혀 다른 감수성을 보여주었다. ‘결혼은…’에서 뻔뻔한 지식인을 보여주었다면,‘거미숲’에서는 차분한 표정 뒤에 숨은 광기와 절망감을 드러낸다.
작년 겨울 전남 순천에서 ‘거미숲’ 촬영을 마치자마자 올 봄 캄보디아로 가서 ‘R포인트’를 찍느라 쉬지를 못한 탓인지 얼굴이 핼쑥했다.‘R포인트’의 촬영이 계속 연기되면서 많이 지친 듯했다. 몸무게가 10㎏이나 빠져 58㎏라고 했다.
- ‘거미숲’에서 스타일 강한 화면과 리얼한 폭력장면이 인상적인데.
“구성이 독특하고 색감이 잘 살았는데 전달은 다소 난해해요. 애초 시나리오는 전달력도 좋았고 어렵지 않았는데, 분량이 2시간30분짜리였다는 걸 놓쳤죠. 여러 사정상 110분으로 줄이다 보니 중요한 장면도 삭제됐어요. 다행히 큰 틀은 손상되지 않았고, 볼만한 영화지만 아쉬워요.”
-여전히 혼자서 일하는지.
“회사에 소속되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해야 할 때도 많아요. 혼자서 하는 건 제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죠. 직접 차 몰고 촬영장을 다니다가 졸음운전해서 죽을 뻔도 했죠.”
-화면에 현장의 냉기가 느껴지더라.
“숲도 추웠지만 터널에서 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찍는데, 냉동실 하고 온도가 비슷했어요. 영하 30도는 되지 않았을까. 감정표현을 극대화해야 하는 장면인데, 몸이 얼어 붙어서 곤혹스러웠어요. 더구나 단 이틀동안 촬영해야 돼 더 힘들었죠.”
-주인공 강민도 만만치 않은 캐릭터고 만들기 힘든 영화라는 느낌인데.
“제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상상력을 동원했습니다. 극도로 예민해졌고, 힘들게 나를 학대하며 찍었어요. 숙소도 허허벌판에 있었고.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불면증에 스트레스로 시달렸는데 10년 넘게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많이 의지하며 견뎠죠.”
-‘거미숲’을 선뜻 잡은 이유는
송일곤 감독의 ‘간과 감자’라는 단편을 보고 색채감에 반했어요. 강민이 쉬운 역이 아니었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죠. 카페에서 대사나 주고 받는 역이 아닌 충분히 즐길만한 인물이었어요. 목소리도 뇌수술한 사람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목이 잠길 때까지 있는 힘을 다 해 학대했죠.
-그 좋아하는 야구도 못했겠다
“제가 빠져 소속 팀(사회인 야구)이 연패의 늪에 빠졌단 소식이에요. 내가 있을 땐 준우승까지 했는데, 꼴찌랍니다.”
-앞으로 배우로서 갈 길은
“수식어처럼 따라 다니는 ‘지성적’‘여성친화적’ 테두리를 벗어나 선택의 기회를 더 넓히고 싶습니다. 감당할 자신이 있습니다. 제 인생이 더 중요하니까요. 실패를 하더라도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해야지 되겠어요.”
/이종도기자 ecr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