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의 메카로 불리던 강남 테헤란로가 중고 거래의 메카가 되고 있다. 불황을 맞은 업체들이 고급 오피스건물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사무용품 처분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20일 테헤란로에서 불과 수백미터 떨어진 언주로에 '파실래요 사실래요'라는 이색적인 간판이 내걸렸다.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가득한 강남 복판에 중고용품 전문매장 '리싸이클시티'가 들어선 것이다. 컴퓨터 책상 의자 등 사무용품이 60% 이상을 차지하는 리싸이클시티 역삼점은 매장규모 200여평에 월세만 1,000만원이 넘는다.
문대왕 사장은 "테헤란로 일대는 요즘 하루가 다르게 사무실이 바뀌고 새로운 업종이 들어오고 있다"며 "이 같은 불황기가 중고시장으로는 호황기라는 판단에서 강남 진출을 결정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달 초 리싸이클시티 역삼점이 개점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업체들로부터 "사무실을 비우려고 하는데 쓰던 사무용품을 사가라"는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매출도 하루 100만원 넘게 올리고 있다. 리싸이클시티측은 앞으로 월 1억원 이상의 거래를 기대하고 있다. 강남의 중고 물품은 다른 곳보다 고급품인 데다 사무실 밀집지역이라 수익성은 더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강남재활용센터의 오동훈씨는 "화물차 3대로 소화를 하지 못할 정도로 강남구 지역에서 사무용품 중고 매물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물건을 내놓는 사무실에 가보면 차린 지 1년도 안 된 신생 벤처도 많아 새것과 다름없는 중고용품이 헐값에 나온다"고 말했다. 중고용품이 창고에 쌓이다 보니 조금만 질이 떨어지면 오히려 구매자측에서 외면하기도 한다는 것. "돈을 안 줘도 좋으니 가져가 주기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테헤란로 일대는 사무공간이 늘 부족한 지역이었지만 올들어 빈 사무실이 생기기 시작했다. 2·4분기 역삼역 부근 중소형 빌딩의 경우 공실률은 10% 안팎으로 지난해보다 1.5배나 늘어났다. 대표적 대형 빌딩인 스타타워, 미래와사람, 한솔빌딩, 로담코빌딩 등이 모두 1,000평 이상(약 3%) 비어 있다.
벅스뮤직, 웹투어 등처럼 비용 절감을 위해 평수를 줄여 옮겨가는 경우도 많고 IT 벤처, 콜센터, 외국계 금융사 등이 떠난 자리엔 부동산, 다단계유통업체 등이 들어서기도 한다. 테헤란로의 급격한 업종 변화가 중고 시장이라는 새로운 업종을 강남으로 불러들인 셈이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