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씨를 붙잡으러 갔을 때는 가슴이 벌렁거려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유씨 검거의 1등 공신인 A씨는 "어떻게 그런 일을 했는지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며 제보에서 검거까지의 과정을 흥분된 목소리로 풀어 놓았다. A씨는 전화방 영업을 하는 친구들로부터 "종업원들을 출장 보내면 안 돌아오는데 신청한 전화번호가 모두 일치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갑자기 최근에 본 영화 '올드 보이'가 떠올랐다. 혹시 섬 같은데 끌려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14일 평소 알고 지내던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 양필주 경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얘기했다. 양 경장은 "그 번호로 전화가 다시 오면 바로 알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한 업주로부터 문제의 전화가 왔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15일 새벽 1∼2시께. 유씨가 신촌의 업주에게 여자를 불러달라고 요구, 종업원을 보냈지만 "나이 많고 못생겼다"며 퇴짜를 놓았다는 것이었다. A씨는 기지를 발휘, 유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젊고 예쁜 아가씨를 보낼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며 시간을 벌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양 경장에게 전화를 걸어 검거에 협조하겠다고 말한 뒤 친구 1명, 업주 3명, 종업원 2명과 함께 승용차편으로 유씨가 기다리는 신촌 그랜드마트 뒤쪽으로 향했다. 유씨가 의심하지 않도록 '미끼' 역할을 할 종업원과 일행 1명은 중간에 택시로 갈아 태웠다. 유 경장 등 경찰관들도 합류했다.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새벽 4시, 종업원이 택시에서 내려 유씨에게 전화했다. 유씨는 "왼쪽 골목으로 가라. 오른쪽 골목으로 가라"고 몇 차례 지시를 내리며 미행하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이 사이 A씨 일행과 경찰관들은 인근 골목에 나뉘어 유씨를 기다렸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마침내 어두운 골목에서 유씨가 나타났다. A씨 일행은 유씨에게 다가가 "유영철씨 아니야"라고 물었다. 유씨가 우물쭈물하자 이들은 증거품인 휴대전화가 있는지 뒤졌다. 하지만 이미 유씨는 휴대폰을 숨긴 상태였다. A씨 일행은 유씨의 팔을 낀 채 자신들이 타고 온 차에 태워 기수대로 향하려 했다.
차가 출발하려는 순간 유씨는 뭔가를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증거품인 전화방 광고 전단지였다. A씨 일행은 이를 빼앗기 위해 유씨에게 달려들었고 엎치락 뒤치락 한바탕 격투가 벌어졌다. 양 경장과 지원 나온 서강지구대 김성기 경장이 차로 달려온 뒤에야 유씨를 제압하고 전단지를 빼앗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4시50분 유씨의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양 경장도 19일 인터뷰를 갖고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한편 경찰은 A씨에게 연쇄 살인범에게 걸려있던 현상금 5,000만원을 지급키로 했다.
/최영윤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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