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세계를 바꾸는 올림픽]<3> 올림픽과 정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세계를 바꾸는 올림픽]<3> 올림픽과 정치

입력
2004.07.20 00:00
0 0

제3회(1904) 올림픽 마라톤경기가 열린 세인트루이스 도심. 두 명의 흑인이 무시무시한 도사견의 추격을 받고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원주민 줄루족 출신 렌타우와 야마사니는 보어전쟁에서 붙잡힌 노예였다.원하지도 않았던 올림픽 마라톤경기에 참가한 두 선수는 인간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대회 조직위가 풀어놓은 개들에게 쫓겨 각각 9위와 20위로 골인했다.

당시 조직위는 볼거리 차원에서 이른바 '전시용 경기'를 열었고 시험용 쥐 역할은 아메리카인디언, 피그미족 등 노예와 식민지 치하의 원주민이었다. 그들이 과연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를 외쳤을까. 아니다. "휴, 살아 남아서 다행이다."

올림픽은 정치다.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며 한차례로 끝난 1904년 전시용 경기를 108년 근대올림픽 역사의 웃지 못할 해프닝 정도로만 기억한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무례'다. 인간의 모든 활동이 정치와 떼놓을 수 없듯 "세계인의 축제"란 명분을 걸고 부활한 근대올림픽에 정치가 빠질 리 없다.

인종차별, 세계대전, 냉전, 지역분쟁, 테러 등 오륜기를 오염시킨 극악무도한 정치의 어두운 단면을 씻어내는 데는 무려 한 세기 이상이 필요했다. 올림픽은 스포츠란 이름으로 인간의 오만과 위선, 이기심과 권력욕을 정화해가는 기나긴 투쟁이었다.

근대올림픽 초창기에 "스포츠는 평등하다"는 올림픽 정신을 웃음거리로 만든 것은 제국주의 망령에서 비롯된 인종차별이었다. 하지만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숭고했다.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베를린대회(1936)에선 '검은 탄환' 제시 오웬스(미국)가 육상 100m 등 4관왕에 오르며 백인우월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하지만 그는 정작 고국에 돌아가서는 다시 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멕시코시티대회(68)에선 미국 대표로 나선 흑인 선수들이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의 몸짓으로 검은 장갑을 끼고 시상대에 올랐다. 로마대회(60)에선 '살아있는 복싱 전설' 무하마드 알리(당시 케시어스 클레이)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 됐다. 올림픽 영웅이었지만 그 역시 고국에서 멸시를 당하자 금메달을 허드슨강에 던져버렸다.

그가 금메달을 돌려 받은 것은 그로부터 36년 뒤인 애틀랜타대회(96). 파킨슨 병을 앓던 그는 불편한 몸으로 당시 올림픽 성화 최종주자로 나서 인간승리와 더불어 인간평등의 대의를 만방에 알렸다.

남아공의 인종차별도 도마 위에 올랐다. 50년 인종등록법을 만들어 인종차별을 법제화한 남아공은 24년 동안(64도쿄~88서울) 올림픽 무대에 서지 못했다.

심지어 몬트리올대회(76)에선 남아공의 인종차별에 반대해 아프리카 26개국이 출전을 거부했다. 오죽하면 84년 맨발의 육상스타 졸라 버드가 국적을 영국으로 바꾸었을까. 남아공의 올림픽 입성은 '흑백 단일팀'을 구성한 바르셀로나대회(92)부터 허용됐다.

전쟁이 인류의 유산을 앗아가듯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올림픽의 존립마저 위협했다. 베를린(1916), 도쿄(1940), 런던대회(1944)는 1, 2차 세계대전 때문에 열리지 못했다. 인류는 대전 후에 치러진 앤트워프(1920)와 런던대회(1948)에 패전국과 전범국의 참가를 허용하지 않았다.

70년대는 '암흑의 시대'로 문을 열었다. 72년 9월5일 오전5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게릴라 조직 '검은9월단'의 테러로 이스라엘 선수 11명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류의 화합을 담은 올림픽경기는 테러에 노출돼 피로 물들었다. 정치적 술수로 '근대올림픽 100년'을 아테네로부터 도둑질한 애틀랜타(96)에서도 2명이 사망하는 폭탄테러가 있었다.

80년대는 '절반의 시대'였다. 옛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맞서 올림픽 사상 첫번째 보이콧(불참 선언)이 행해졌던 멜버른대회(56)에서 비롯된 동서냉전은 모스크바대회(80)에선 서방 67개국이, 로스엔젤레스대회(84)에선 동구권 11개국이 불참해 반쪽짜리로 치러졌다.

88서울올림픽은 대외적으론 비록 북한과 그 동맹국(쿠바 에티오피아 등)이 빠지긴 했지만 동서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대회로 기억된다. 하지만 국내적으론 광주민주화운동과 군사독재의 어두운 역사를 덧칠 한 대회였다.

인류가 올림픽의 진정한 의미를 아로새긴 대회는 새 천년과 함께 열린 시드니대회(2000)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등록된 199개국 뿐 아니라 동티모르까지 참가해 인류의 화합을 다졌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남북한도 '한반도기' 아래 동시입장의 감격을 누렸다.

그리고 다시 올림픽은 '108년의 오디세이(여행)'를 마치고 아테네로 귀향했다. 점증하는 테러 위협에도 불구하고 최대의 '지구촌 잔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고대올림픽의 기본이념이 활활 타오르길 염원하기 때문이다.

고대엔 엘리스(현 올림피아)의 전령이 각 도시에 올림픽 개최를 알렸고 그것은 '평화협정'의 발효를 의미했다. 이를 어기고 전쟁을 일으킨 군사강국 스파르타(BC 420)마저도 양 10만 마리 값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어떤 정치적 논리로도 인류가 하나되는 스포츠 잔치를 위협할 수는 없다. 올림픽은 정의로운 정치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 전쟁

1916 베를린-1차 세계대전으로 무산

1920 앤트워프-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터키 등 패전국 참가 불허

1936 베를린-나치즘 선전장 변질

1940 도쿄-중일전쟁으로 취소

1944 런던-2차 세계대전으로 무산

1948 런던-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 전범국 참가 불허

▲ 인종차별

1904 세인트루이스-아메리카 원주민, 피그미족 등 경기 동원

1964 도쿄-1992바르셀로나-남아공 인종등록법 제정으로

참가자격 박탈

1976 몬트리올-남아공 인종차별 항의, 아프리카 지역 26개국 불참

▲ 테러

1972 뮌헨-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검은9월단’ 테러로

선수 11명, 경찰 1명, 테러리스트 5명 사망

1996 애틀랜타-올림픽공원 테러 추정 폭탄 사고로 2명 사망

▲ 냉전ㆍ지역 분쟁

1956 멜버른-옛 소련의 헝가리 침공으로 스페인 스위스 등 불참,

수에즈운하 분쟁으로 이라크 레바논 이라크 등

중동국가 불참

1980 모스크바-옛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항의, 67개 서방국 불참

1984 로스엔젤레스-옛 소련 등 동구권 11개 국가 불참

1988 서울-북한의 불참으로 쿠바 에티오피아 등 동맹국 불참

■테러대비 보안비용 시드니 3배 투입

108년만에 올림픽 발상지에서 다시 열리는 20004아테네올림픽의 새로운 화두는 테러 등 안전 대책이다.

대회 개막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19일 현재 아테네 시내 곳곳에는 보안병력이 배치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당사자인 미국과 영국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데다, 알 카에다 등 테러조직들이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올림픽을 활용해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하려 들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알 카에다는 빈 라덴 등 지도부가 건재하고, 1만8,000여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어 올림픽 기간 중 이들의 테러 발생 위험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그리스 내 이슬람세력이 거의 없다는 점을 들어 테러 가능성이 낮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그리스의 보안시스템이 다른 유럽연합(EU)국가에 비해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큰 국제대회를 치러본 경험이 없어 보안의식 및 노하우도 부족하고, 주경기장도 개막 직전에야 완공돼 보안체계를 점검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

또 2,000여개의 섬과 1만5,000㎞의 해안선을 갖고 있어 이슬람권 테러리스트들의 침투가 비교적 용이한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제 테러리스트들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그리스 내에는 소규모 폭탄테러를 자행하는 극좌 무정부주의 세력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5월 아테네 인근 지역경찰서 폭탄테러도 이들의 소행으로 알려졌다.

그리스 당국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 안전대책 비용으로 무려 12억달러를 책정해 놓고 있다. 이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의 3배에 달하는 역대 최대 금액이다.

또 7만여명의 보안인력을 배치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및 미국의 협조를 받아 국경선 및 해상통제에 나서고 있다. 대회기간 중에는 NATO 소속 공중조기경보기(AWACS)까지 띄워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안전한 올림픽’을 치러낸다는 계획이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