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9일 북한군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당시 교신 내용 보고 누락과 관련, 추가조사를 지시한 것은 군 상층부 보고 체계의 정확성과 중간조사 결과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드러낸 것이다.국방부, 국정원 등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의 조사는 당초 이날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사실상 재조사에 해당하는 '추가조사'를 지시했고, 보고는 '중간 보고'라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이례적으로 이 같은 지시를 대외적으로 발표한 데서 군 개혁의 고삐를 더욱 당기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정부 혁신'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워 각 부처 개혁을 추진해왔으나 국방부의 개혁이 미진하다고 판단하고 조영길 국방장관을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따라서 이번에 조 국방장관과 김종환 합참의장 등이 문책을 받을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노 대통령은 "조사의 핵심은 현장에서의 작전 수행이 적절했느냐가 아니라 당시 상황이 정확히 보고됐느냐 하는 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합조단의 보고가 초점을 피해간 것이라는 질책이나 다름없는 언급이다. 노 대통령은 우선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으로부터 공격을 받기 직전인 14일 오후 4시52분께 송신을 했다는 사실이 합참 실무 부서까지 보고됐으나 합참 수뇌부에 보고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정확히 어느 선까지 북한측의 송신 사실이 보고되고 어느 선에서 더 이상 상부에 보고하지 않기로 판단했는지를 가려내라는 것이다. 군이 "북 경비정의 NLL 월선이 확인된 상황에서 북측이 중국 어선으로 위장하는 핫라인 교신 내용까지 일일이 상부에 보고할 필요가 있느냐"고 밝힌 점을 수긍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남북간 해상 충돌을 막기 위한 핫라인을 가동한지 불과 1달 밖에 안된 상황에서 북측의 응신 내용이 비록 허위라고 하더라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는 게 청와대측의 판단이다. 청와대는 또 군 일각이 대북 화해 정책에 찬물을 끼얹으려고 의도적으로 북한측의 송신 사실을 묵살했을 가능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노 대통령이 "국민에 대한 발표도 정확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14일 합참이 발표할 때 북한측의 송신 사실을 감춘 경위에 대해 추가 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교전 수칙을 준수했다'는 현장에서의 작전 수행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 일선 군 장병들에서 대해서는 나름의 신뢰를 보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국방부·합참 "어디까지 가나" 당혹
합동조사단이 북한 경비정의 답신이 이뤄졌다는 보고가 중간에서 '유실'된 경위에 대해 진상조사를 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올렸으나 노 대통령이 재조사를 지시하자 국방부와 합참은 당혹한 표정이 역력했다. 일부에서는 "군 내 보수강경파 죽이기 일환이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당초 국방부는 19일 오후 합조단 조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오전 "추가적으로 확인할 사항이 발생, 발표가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 말이 나온 시점이 바로 청와대로부터 조사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은 직후였다.
국방부나 합참은 청와대가 당시 대응상황이 아니라 보고의 정확성 부분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자 더욱 긴장하는 눈치다.
군은 북측의 답신에 대한 허위보고 논란이 빚어진 뒤 "수뇌부에 대한 보고누락은 실무자의 상황판단에 따른 문제이지 보고체계나 군 기강과 관련된 부분이 아니다"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청와대가 비상상황 대응시 보고체계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를 지시하자 "도대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새롭게 이뤄질 진상조사에서 허술한 보고체계가 일정부분이라도 드러날 경우 군 수뇌부의 경질 등 파문이 불가피한데다 여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의도적인 은폐가 있었을 경우 줄줄이 옷을 벗는 사태까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 내부적으로는 "보고누락에는 작전 관계자의 상황판단이 크게 작용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군 관계자는 "현장 지휘관이 남북화해분위기 등 대북관계 전반을 염두에 두고 상황판단을 하기는 어렵다"면서 "현장에서 북측의 답신을 기만전술로 확신했다면 정보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 보고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정진황기자
■문책칼날 軍수뇌부 향하나
노무현 대통령이 19일 북한 경비정의 서해북방한계선(NLL) 침범 보고누락에 대한 정부합동조사단의 진상조사에 불만을 표시하고 재조사를 지시함에 따라 군사정보 보고체계의 허점과 이에 따른 문책범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합조단에 따르면 14일 군 통신감청부대는 우리 초계함의 경고사격 전 북측이 "지금 내려가는 배는 중국어선"이라고 무선응답한 사실을 포착, 합참 정보부서에 보고했다. 그러나 합참의장과 합참 작전본부장, 정보본부장에게는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합참 관계자는 "정보관련부대가 북측 답신을 파악, 14일 오후 5시12분께 합참 정보본부에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또 정식보고라인에 있었던 해군은 북측의 답신 사실을 알았으나 합참에 대한 보고를 누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서해 경비 함정에서 보고를 받고 이를 파악하고 있었다.
북측 답신에 대한 보고가 실무진에서 누락된 이유에 대해 합참 정보부서는 "상황이 이미 종료된데다 북측의 답신은 거짓내용이 명백하고 동문서답식 답변이어서 정보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 군 수뇌부까지 보고하지 않았다"고 합조단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도 "북 경비정이 틀림없는데 중국어선이라고 했기 때문에 기만 통신으로 보고 이를 합참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합조단이 노 대통령에게 보고한 진상조사 결과는 군 관계자의 진술을 토대로 정보부대와 해군 실무선에서의 판단착오에 중점을 두면서 문책범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이뤄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설사 북측의 답신을 기만전술로 판단했더라도 이 같은 중요사실에 대한 사후 보고는 최소한 이루어져야 했다는 게 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일 청와대까지 허위보고가 올라가고 15일까지 군 수뇌부조차 북측의 답신 사실을 알지 못한 점은 중대한 허점을 보인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점으로 미뤄 노 대통령은 해명성 진상조사 보고를 군의 '책임회피용'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노 대통령의 재조사 지시는 북측의 답신이라는 극히 중요한 정보가 합참의장, 정보본부장 등 군 수뇌부에 과연 보고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상당부분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새로 이뤄질 진상조사는 더욱 철저할 수밖에 없고 문책의 칼날은 군 수뇌부를 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새 조사에서 군 수뇌부의 북측 답신 인지사실이 드러날 경우 문책범위는 물론 사태의 파장도 훨씬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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