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가 전·현직 고위 공직자들이 국민은행에서 퇴임 기간 자문료 명목으로 거액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도한 이후 정부와 금융계 안팎에서 각종 음모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386 인사'들이 이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에 흠집을 입히기 위해 흘린 것이다." (386 음모론) "감사원의 카드 특감 결과에 불만을 품은 금융감독원이 감사원과 재경부 등에 보복성 카드를 꺼낸 것이다." (금감원 음모론) "김정태 국민은행장을 흔들려는 세력이거나, 거꾸로 금융 당국의 회계 검사에 반발한 국민은행측에서 흘러나온 것이다."(안티 김정태 음모론, 혹은 국민은행 음모론)갈래를 달리하는 음모론이지만 저변에 깔린 공통점은 있다. 사건에 연루된 기관이나 개인들이 각자 자신에게 유리하게 음모를 꾸민 주체들을 생산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음모론 자체가 음모적이라는 얘기다. 이중 하나만 예로 들어 보자. '금감원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들은 감사원의 카드 특감 결과 발표 시점(16일)에 맞춰 기사가 보도(17일)됐다는 점을 근거의 하나로 제시한다. 하지만 본보가 이미 수일 전부터 확인 취재를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근거 없는 주장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음모론들은 한결같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흘림으로써 문제가 불거졌다는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백 보 천 보 양보해서 어떤 형태의 음모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이번 사건의 본질과는 별개의 문제다. '어떻게 사실이 드러나게 됐느냐'에 따라 '돈을 받은 것이 정당했느냐'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본질을 감추려는 얄팍한 의도가 각종 음모론에 깔려있다고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영태 경제부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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