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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 본다]<26·끝>5부-다시 보는 한일관계④개방과 충돌,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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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 본다]<26·끝>5부-다시 보는 한일관계④개방과 충돌,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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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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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일본 전공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는 필자는 그동안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입시면접때면 늘 학과 지원 동기를 물어보았는데, 90년대 후반 학번 학생들과 2000년대 학번 학생들 사이에 미묘한 차이를 발견한 것이다.우선 이들의 공통점은 만화 등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장래 희망으로 관광 안내인을 많이 꼽는다는 것도 비슷하다. 반면 차이점은 일본 대중문화에 관심이 있다거나 좋아한다는 말 뒤에 설명을 붙이느냐 붙이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90년대 학번들은 대개 '그러나 일본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2000년대 학번들은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90년대 학번들은 2000년대 이후 학번에 비해 일본 대중문화를 좋아하고 즐기고 있는 것에 대해 왠지 모르는 마음의 부담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한일관계의 질적 변화가 일어난 시기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학번들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시작된 이후에 고교생활을 했다는 점이 이 같은 차이를 초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편 내가 아는 일본 전공 학생들은 일본 대중문화를 좋아하면서도 대학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 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비판적 시각과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열정이 별 갈등 없이 공존하는 현상은 1980년대 말 무렵부터 진전된 한일관계의 질적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일관계는 탈냉전과 더불어 군사독재체제의 붕괴와 민주화, 시민사회의 발전, 88올림픽, 대중 소비사회의 진전, 해외여행 자유화, 정보화 등 한국사회 내부의 변화를 배경으로 종래와 다른 단계를 맞게 됐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래 한일관계는 정치 경제 차원에 국한되었으나, 이 시기 한일관계는 시민사회, 생활세계의 영역으로 확대된다.

한일관계의 질적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현상으로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과거사 청산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점이며, 다른 하나는 일본 대중문화의 유입이다. 특히 이 두 가지가 동시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냉전체제 하에서 군사독재 정권은 반공과 반일, 민족주의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이용하면서, 일본의 과거사 청산 문제를 사실상 덮어두었다. 1987년 이후 시민사회가 발전하면서 비로소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될 수 있게 됐고, 그것은 이제 우리 역사 바로잡기라는 관점에서, 또 냉전체제에 의해 굴절된 우리 현대사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와 결부되는 문제제기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과거사 청산 문제를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담론화할 수 있는 동력이 우리 사회 내부에 형성된 것이다.

한편 일본 대중문화는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 민간 교류의 확대, 위성방송이나 인터넷 등에 의한 정보화의 진전과 더불어 급속히 우리 사회에 유입됐다.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 이전에 우리사회에 공공연히 들어올 수 있었다.

산업화하고 있는 대중문화의 또 한가지 중요한 측면은 일상생활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시민사회, 생활세계 차원의 교류 확대는 자연히 우리 사회에 일본인의 일상적인 삶의 일부인 대중문화가 전달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88올림픽 이후 우리 사회는 산업사회적인 특성과 탈산업사회적인 특성을 압축적·동시적으로 경험하면서 탈권위주의, 정형화된 규범적 사고, 고정관념 등에서 탈피하게 됐으며, 새로운 가치와 아이덴티티, 다양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화됐다. 과거 편협한 반공·반일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하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선택한 대중문화는 서구적인 것이었다.

그에 비해 90년대 이후 젊은 세대는 일본 대중문화를 또다른 선택지로서 받아들였다. 일본의 대중문화는 '일본적'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서구적인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일본의 스타일로 변형된 것으로서, 우리 사회가 과거에 접하지 못한 새로운 문화 형태였다. 그리고 오늘날 한일 양국의 젊은 세대는 점차 대중문화를 통해 공통의 언어를 발견해 가고 있다. 과거사 청산에 관한 문제제기와 일본 대중문화의 향유가 공존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들은 기성세대의 사고틀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으리라 본다.

2004년 1월 일본 대중문화의 전면 개방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강한 흡인력을 지닌 일본의 대중문화가 자유롭게 유통될 경우 우리사회에 끼칠 경제적, 사회·문화적 영향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개방이 시차를 두고 단계적으로 시행되면서, 우려했던 점들의 상당 부분 해소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상징되는 문화교류가 과거사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약화 내지 무화시키는 기체로 작용할 것을 우려한다. 이것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따른 가장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충돌 지점이라 하겠다.

그간의 일본 정부의 태도에 비추어 이것은 이유있는 우려이다. 그러나 한일관계의 질적 변화를 뒷받침한 우리 사회 내부의 동력에 주목한다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이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한일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협찬:SK 주식회사

/한영혜 한신대 국제학부 교수

/ 48세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 석사, 일본 쓰쿠바대 사회과학연구과 박사 저서 "일본의 지역사회와 시민운동" (한울, 2004) 등

■내년 "한일 우정의 해"… 교류 더욱 활발해질듯

올해부터 일본 대중문화가 실질적으로 전면 개방됐다. 이를 계기로 한일 양국의 문화·인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한일간의 문화적 교류가 본격적으로 활성화한 것은 2002년 양국이 공동 개최한 축구 월드컵대회가 중요한 시발점이 됐다. 양국은 2002년을 '한일 국민교류의 해'로 정하고, 획기적이면서도 풍성한 문화교류 행사를 마련해 큰 호응을 얻었다. 월드컵이 끝난 뒤부터는 청소년 및 스포츠 교류를 촉진하는 '한일 공동 미래 프로젝트'도 마련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양국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일 수교 40주년인 2005년을 '한일 우정의 해'로 설정, 문화 학술 스포츠 등 분야의 교류를 한층 더 강화시키기로 했다. 오는 21, 22일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을 갖는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회담 중에 '2005년 한일 우정의 해'를 공식 선포할 예정이다.

인적 교류도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한국을 찾는 일본인수는 1999년 처음으로 200만명을 돌파한 이후 매년 230만명을 상회하고 있다. 지난해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 기증후군) 등의 영향으로 잠시 주춤했으나 올해 다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수는 2000년부터 110만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인적교류의 형태도 다양화하고 있다. 대부분 관광의 형태이지만 청소년간, 지역간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는 등 양국의 인적 교류는 양과 질에서 두터워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양국의 미래인 청소년들간의 교류가 정부, 지방자치단체, 민간청소년단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비록 아직은 관주도의 성격이 짙지만 이 처럼 확대되고 있는 양국의 문화·인적 교류는 역사문제 등으로 흔들리기 쉬운 한일관계를 보다 성숙하고 안정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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