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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달고나'

입력
2004.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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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왕자를 만나는 미래만이 판타지는 아니다. 때로 과거도 판타지가 된다.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어려웠던 시절’은 미화되고 그것은 추억상품이 된다.송승환이 이끄는 PMC의 창작 뮤지컬 ‘달고나’(연출 조광화)는 멀게는 ‘맘마미아’ 가깝게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젖줄을 대고 있는 작품.

1970~1980년대 히트곡, 나팔바지와 타자기를 비롯한 추억의 소품으로 지난 시대의 추억을 무대 위에서 팔고 있다. 그러나 ‘달고나’는 추억의 진열장을 넘어선, 가슴 뻐근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극장 문을 나서면 당신은 어쩌면 ‘달고나’에 흐르던 ‘해바라기’의 노래 ‘행복을 주는 사람’, 또는 트윈폴리오의 ‘웨딩 케이크’를 흥얼거리며 추억의 서랍장을 들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제목이 ‘달고나’인 까닭은 뮤지컬이 제공한 과거의 재료를 가지고 관객 스스로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자 채에 들어간 하얀 육각형의 재료를 녹이면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가 불현듯 마음 속에 드리우는 것이다.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슬레이트 지붕, 기와 지붕으로 덮은 골목길과 장독대, 그리고 집 안에 자리 잡은 밴드가 관객을 반긴다. 비좁은 무대 위에 즐비하게 배우들이 늘어서면 관객은 주문에 걸리듯이 과거 속으로 빠져 든다.

추억상품을 파는 홈쇼핑 PD인 세우(이계창)는 자신이 쓰던 구식 타자기가 옛 애인 ‘장독대 소녀’(임선애)에게 낙찰되자 젊은 날을 떠올린다. 장독대 안에 쌓인 연애편지를 넘기면서 시간도 거꾸로 돌아간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요술공주 세리와 짱가가 넘나들고, 극장에는 선도교사와 학생들이 술래잡기를 한다. 길거리에선 매캐한 최루탄이 터지지만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 가네’.(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 중)

정신 없이 넘겨지는 추억의 사진첩 속에서 중년의 관객은 눈물을 떨구고 한숨을 쉰다. 젊은 관객들은 출구 없는 1970년대의 답답함을 풀던 나이트 클럽 속으로 뛰어 들어 삼촌뻘의 세대와 함께 펑크와 디스코의 열기에 취한다.

1970년대풍 의상을 요즘 스타일로 개조한 체크무늬 나팔바지, 더빙하는 성우와 극중 스크린 안의 배우들의 우스꽝스러운 연기로 보는 1970년대 영화들, 김현식의 ‘골목길’에 맞춘 비닐 우산 춤, 아카펠라 풍으로 만든 ‘사계’ 등 현대적으로 해석한 흘러간 노래의 정취가 ‘달고나’의 맛을 더 오묘하게 만든다.

● 현대적 감각 물씬한 추억의 사진첩

그런데 ‘달고나’가 가슴 뻐근하게 만드는 게 시쳇말로 진정성의 힘이라든가 그 시대의 공기를 불러온다든가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지난 해 충무로의 수작을 가리키던 용어인 ‘웰 메이드’야말로 ‘달고나’에 잘 어울리는 수식어다.

16번이나 수정했다는 대본, 누구 하나 튀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잘 돋보이는 배우의 앙상블, 골목길과 장독대를 잘 활용한 소극장 무대, 흘러간 가요를 감각적으로 편곡하는 솜씨는 어느 한 명의 특출한 재능에서 나온 게 아니다. 1년 6개월 간의 공정 끝에 나온 만큼 공력이 남다르다.

사실상 ‘창작 뮤지컬’이라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창작이 아닌 뮤지컬이 어디 있을 것인가.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온 것이 아니니 감안하고 봐달라’는 애교와 자조 섞인 표현이다.

‘달고나’는 ‘창작’이라는 딱지를 떼도 좋을 만큼 한국 뮤지컬의 능력이 일정 수준에 올라 있음을, 제대로 된 뮤지컬을 위해선 장시간의 준비가 필요함을 말해주는 사례다.

막이 내리고 박수가 터지는 시간. 배우들은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고 노래하며 형형색색의 종이비행기를 관객들에게 날린다. 그러나 ‘행복을 주는 사람’은 바로 배우인 그대들이며, 종이비행기를 받아야 할 이들도 응당 당신들이다. 8월8일까지 아룽구지극장. (02)739-8288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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