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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2004여름…노영심…앵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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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2004여름…노영심…앵두

입력
2004.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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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내가 연출하는 '낭독의 발견'에 노영심씨가 출연했다. 연출자 못지않은 연출 감각으로 정평이 나있는 그녀와의 작업은 묘한 긴장감을 주었고,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하는 그녀 역시 신중을 거듭했다.야외촬영을 위해 VJ를 보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그녀의 동네를 산보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돌아온 VJ는 내 책상 위에 푸른 나뭇잎에 싸인 분홍빛 꽃과 앵두를 올려놓았다. 웬 거냐고 묻자 노영심씨가 제작진에게 선물로 보냈다는 것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작고 아름다운 선물에 제작진은 한동안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딱 앵두 한 알만 맛보고는 이틀 후에 있을 녹화 때 이 선물을 소품으로 보여주자고 의견을 모았다. 아트디렉터 윤이서씨에게 앵두를 식탁 위에 배치하자는 제안을 했고, 커다란 유리그릇에 앵두를 담아내기로 했다. 녹화 날 스튜디오에 도착한 노영심씨는 원목 탁자에 앵두가 놓인 것을 보고 미소를 머금었다. 녹화 내내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재능, 글쓰는 이로서의 재능, 낭독자로서의 재능을 마음을 다해 보여주었다. 그 곁에 곱게 담긴 앵두들이 마치 그녀가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실한 마음의 조각처럼 느껴졌다.

방송이 끝난 늦은 밤, 그녀에게서 메일이 왔다. "방송을 잘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열어주어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마음을 연 것은 그녀였다. 그녀가 앞으로 열어갈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조그마한 선물의 힘,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고 모아주고 결국은 힘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닌가 싶다. 2004년 여름은 작은 앵두로 인해 오래 기억될 듯 하다.

/홍경수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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