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보수 언론들이 요즘 노무현 대통령에게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워싱턴타임스 등은 최근 사설에서 노 대통령이 김선일씨 피살과 국내의 강력한 반대에도 이라크 추가 파병을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국익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후하게 평가했다.필리핀이 최근 자국의 인질을 구하기 위해 이라크 파견 병력을 전원 철수시킨 것과 대비되면서 노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초지일관은 미국의 보수 언론들에게 한층 돋보이는 모양이다. 늘 자신에 비판적이고 폄하도 서슴지 않던 미국 보수 언론들의 달라진 대접에 노 대통령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지 쓴웃음을 짓고 있는지 궁금하다.
노 대통령을 줄곧 못마땅해 오던 미 강경파 인사들이 노 대통령에 보내는 시선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얼마 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특사로 한국을 다녀간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한국 정부가 그런 상황을 다루는 태도를 보고 미국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들의 감사가 빈말이 아니라는 것은 김선일씨 피살 며칠 후 열렸던 3차 북핵 6자회담에서 보인 미국의 태도로 뒷받침된다. 논의의 전제로 북한의 선 핵폐기를 고수해 왔던 미국은 단계적 해결방안을 수용했고 그 단계에 따라 북한이 얻을 수 있는 이익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는 한국정부가 군사적 옵션을 경계하며 제시했던 북핵 해결방안을 미국 정부가 대폭 수용한 결과라고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이는 또한 사실상 북한 핵 문제해결 방안과 이라크 추가파병을 연계시켜왔던 노 대통령이 거둔 외교 성과이기도 하다.
미국의 대북접근 변화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체제의 붕괴(Regime Change)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라이스 보좌관이 방한 때 언급했던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얻게 될 놀랄 만한 이익'도 김정일 체제 보장 약속의 또 다른 표현이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나를 한번 믿어 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부시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상공에 드리운 긴장의 구름이 완전히 걷혔다고 보기는 어렵다. 장마구름 사이로 햇볕이 반짝 들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합작품인 이 반짝 햇볕에 건초를 말릴 수 있을까?
북한 핵 문제 협상에서 최대 쟁점은 미국이 강한 의혹을 제기해온 고농축우라늄(HEU)과 북한이 고수하고 있는 평화적인 핵 이용 문제이다. 미국은 HEU 의혹을 그냥 두고 가지 않을 것이며 핵개발의 씨앗이 될 법한 그 어떤 것도 북한 땅에 두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그러나 북한은 미래의 에너지 확보 차원에서 원전을 포기하기 힘들다. 당장은 6자회담의 틀에서 중유가 지원될 수 있지만 이것으로 북한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 핵 문제 해결 후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급증할 북한의 에너지 수요는 북한 경제의 최대 장애로 부상할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급속 성장을 했던 중국의 현재 에너지난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런 면에서 대북 경수로 지원을 쉽게 포기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북한의 신뢰다. 핵무기 포기에 대한 완전한 신뢰 없이는 북한의 원전은 결코 허용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처럼 보이는 김정일 위원장의 성공 여부는 지금의 반짝 햇볕 아래서 세계가 믿어도 될 만큼의 신뢰를 쌓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
/이계성 국제부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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