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심의규정 제11조는 ‘방송은 재판이 계속중인 사건을 다룰 때에는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되며, 이와 관련된 심층취재는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상식적인 규정이다. 그런데 이 규정과 관련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13일 밤 방송된 MBC ‘PD수첩-송두율과 국가보안법’ 때문이다.방영은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MBC 경영진의 제작중단 지시와 그로 인한 노사갈등, “방영에 최대한 신중을 기해달라”는 대법원의 요청, 방송사 간부들이 참석한 시사회 등을 거쳐서야 방영이 결정됐고, 방영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MBC 홈페이지에는 찬반양론이 거세게 맞붙었으며, 보수적 신문들은 방영 결정과 그 내용을 비판했다. MBC는 16일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에서 다시 한번 이 문제를 거론하며 방영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심의규정 11조를 적용할 때, 이번 방송이 ‘공공의 이익’을 해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동안 자세히 소개되지 않았던 송두율씨의 입장을 여과 없이 전달함으로써, 사안의 내용을 잘 모르던 시청자들에게는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는 송두율과 서로 다른 사람이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인물일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탐사보도에서 당연히 제기할만한 의혹이었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내용을 되짚어보면서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제기한 것도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여부는 별도의 문제이다. 송두율씨 주장에 대한 반론 역시 상당 시간을 할애해 보여주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송두율씨의 결백과 정당함에 무게중심이 놓여졌다.
무엇보다도, 왜 항소심 판결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이같은 내용을 방영했는지에 대해서는 시원한 해답이 없다. 선고일 즈음에 방영한 것이 언론의 ‘시의성’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담당 PD는 송두율씨 사례를 통해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을 함께 고민하고, 하루라도 빨리 이 법의 개폐, 수정,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기획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송두율씨 사건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춰 정작 국가보안법에 대한 심층분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을 다루는 심층취재 프로그램이라면 깊이가 모자랐고, 송두율씨 사건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라면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았다.
방송심의규정은 일개 프로그램이 법원의 판결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 국민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판결에 대한 여론의 방향을 움직일 수 있음을 유의하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PD수첩’은 심의규정을 어겼다는 ‘혐의’로부터 분명 자유롭지 못하다. ‘신강균의 사실은’ 역시 떳떳하지 못했다.
‘PD수첩’과 관련된 신문보도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었고, 대법원의 요청이 언론자유 문제와 연결될 수도 있음을 언급한 것은 의미 있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자사의 사장까지 문제제기를 한 방영 시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고, 심의규정중 ‘공공의 이익’ 부분만 강조할 뿐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침묵을 지켰다.
사법적 결론과는 무관하게, 경계인 송두율은 분단의 우울한 단면인 동시에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의 수많은 피해자중 하나이다. 그러나 ‘PD수첩’을 본 후 ‘진보적’ 지식인과 방송인에 대해 오히려 반감을 갖게 됐다는 한 네티즌의 의견에 대해 제작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옳다고 믿는 바’를 애써 주장하기 전에 좀 더 겸손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윤태진/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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