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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여성과 여성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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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여성과 여성의원

입력
2004.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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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에 헌정사상 처음으로 39명의 여성 의원이 진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국회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품었다. 아직 뭐라고 말하기엔 이르지만, 최근 '박근혜 패러디'에 대응하는 여성 의원들을 보면서 그런 기대가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39명이란 전체 의원 299명의 13%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매우 크다. 우선 10명이 지역구에서 당선됐다는 것은 지역구의 여성 당선자가 두세 명을 넘지 못했던 과거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이번에는 또 비례대표 50% 할당을 주장해 온 여성계의 오랜 요구가 받아들여져 비례대표 56석 중 29석을 여성이 차지하게 됐다.

여성 의원들의 자질을 보더라도 탄탄한 경력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꽤 많아서 전체적으로 무난한 수준이다. 시민운동이나 여러 전문직에서 쌓아 온 경험과 양식을 토대로 활발한 의정활동을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그들의 양식이 벌써 당리당략에 함몰돼 가는 불길한 징조가 보인다.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렸던 박근혜 의원 패러디 사진은 저질이고 악의적이다. 정치인들에 대한 성적인 패러디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사진은 여성을 비하하고 모욕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남자들에게는 성적인 풍자가 별 문제가 안되지만 여자들은 풍자대상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수치심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담당자가 그 사진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올린 그 사진을 삭제하는 대신 돋보이게 편집했다는 것은 공무원의 본분을 망각한 짓이다. 그는 청와대 홈페이지의 격을 시정잡배의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이 사건에 대해서 여성 의원들은 마땅히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그러나 여성 의원들은 끝내 공동성명을 내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고함지르고 삿대질하며 싸웠고 간담회는 1시간 30분만에 결렬됐다.

한나라당 여성 의원들이 여성위 소집을 요구하자 열린우리당 여성 의원들은 이 사건이 여성위를 소집할 만큼 중대한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의 '아줌마 발언'부터 다루자고 나섰다. 문화부 차관에게 교수 임용 청탁을 했던 여성을 '아줌마'라고 부른 심 의원의 발언에도 여성 폄하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되지만, 박근혜 패러디에 앞서 그 발언을 다루자는 주장은 상식에 어긋난다.

한나라당 여성 의원들은 단독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와 여성부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여야는 서로 "비협조적이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계속했다. '여성'은 없고 여야만 있었다고 한 신문은 보도했다.

남성 위주로 흘러 온 정치문화를 관행에 물들지 않은 여성의 양식으로 바로잡아 줄 것을 기대했던 국민은 한숨이 나올 뿐이다.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일하는 여성들은 박근혜 패러디와 같은 악의적인 공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모욕감을 주어 여성을 제압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튀어 나온다.

이런 사태가 여당 여성 의원들에겐 '중대한 사안'이 아닌가. 강금실 법무장관과 지은희 여성부 장관은 박근혜 패러디가 "여성에 대한 비하가 담겨 있어 문제가 될 만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여당의 여성 의원들은 그 정도의 문제의식도 없는가. 만일 여당측 여성이 야당측으로부터 그런 모욕을 당했다면 얼마나 펄펄 뛰었겠는가.

여성 의원들은, 특히 비례대표로 의원이 된 여성들은, 자신이 여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성 몫으로 할당된 의원 배지를 달았으면 일차적으로 이 나라 여성에 대한 의무부터 다해야 한다.

여성 문제를 정쟁거리로 삼는 여성 의원들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당리당략의 노예가 된 의원들이 과거에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여성 의원들은 여성에 대한 기대를 배신하지 말아야 한다.

장명수/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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