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레닌'으로 불린 비운의 공산주의 운동가 이정(而丁) 박헌영(1900∼1956) 전집 총 9권이 그의 48주기(19일)를 맞아 이번 주 중 역사비평사에서 나온다.일제 강점기와 광복 직후 조선공산당 활동을 지휘했고, 분단 이후 북한에서 부수상을 지낸 그의 전집 출간은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나온 거물 좌파 운동가의 전집이라 해야 민족주의 성향이 짙은 여운형 조봉암 등 손으로 꼽을 정도다.
권력싸움에 밀리면서 '미제의 간첩'으로 낙인 찍혀 사형당하기까지 박헌영 만큼 한국공산주의운동을 대표하는 인물도 없다.
"과연 출판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한 편집진은 그래서 편집 초기부터 각계 인사 100여명을 '방패'로 내세워 '이정 박헌영 전집 편집위원회'(책임대표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책임편집 윤해동 서울대 강사)를 구성했다. 전집이 결실을 보는 데만 11년, 연인원 100명 이상이 참여한, 개인 전집 편찬으로는 전례가 없는 작업이었다.
"남한에서 새로운 혁명을 선동한다거나 북한의 체제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은밀하고 공포스럽게 유지되어온 박헌영과 좌파에 대한 기억을 역사로 부활시켜야 할 때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편집위원회는 남에서는 빨갱이로, 북에서는 미제의 앞잡이로 몰려 역사 속에서 쫓겨난 박헌영을 되살리는 작업을 '역사의 화해를 위한 작업'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에 한 권 분량으로 박헌영 연보를 작성한 임경석 성균관대 교수는 "주관적인 평가를 철저히 배제하고 박헌영이 남긴 자료와 간접사료들을 망라한 것은 물론,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은 기록을 모두 수록해 객관적인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전집의 의미를 짚었다. 예를 들어 남로당파 숙청작업의 일환으로 체포된 박헌영이 결국 '간첩이었다고 자백했다'는 북한의 공식문건과, 이와 다른 증언들을 다같이 수록하는 식이다.
전집은 경찰신문·기자회견 내용 등을 포함한 직접 저작(1∼3권) 신문기사 등 간접자료(4∼7권) 회고나 증언(8권) 화보와 연보(9권)로 구성했다. 모스크바 국제레닌학교 재학시절 영어로 쓴 학습노트, 첫 부인 주세죽과의 사이에서 본 딸 비비안나에게 보낸 편지, 1945년 8월 20일 조선공산당 명의로 발표된 조선정세에 관한 '8월 테제' 원본자료 등 새로 발굴한 자료도 상당수다.
한편 박헌영의 아들로 이번 전집 제작에 자료제공 등 큰 몫을 한 경기 평택 만기사의 원경 스님은 19일 이 절에서 이정의 천도재를 지낸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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