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주미 한국대사관은 월요일마다 전 외교관과 주재관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연다. 지난해 4월 한승주 대사 부임 이후 달라진 풍경이다. 재외공관은 각 부처가 파견한 주재관들과 외교관들이 화합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한 대사는 회의에서 키신저 칼럼, 보스턴대 총장의 연설 등 유인물을 돌린다. 대사관은 상당히 학구적인 분위기가 돼가고 있다고 한다. 원래 교수였고 외교부장관 시절에도 교수처럼 기자간담회를 했던 사람이니 그럴 법도 하다. 한 대사는 월례 브라운 백 미팅도 열고 있다.■ 브라운 백은 패스트 푸드점에서 음식을 싸주는 누런 봉지를 말한다. 브라운 백 미팅은 식사를 겸한 모임이므로 긴 토론보다는 흔히 주제 발표와 간단한 질의로 진행된다. 취지는 다양한 사회현안을 접하게 하고 토론문화를 정착시켜 보자는 것인데, 재경부 복지부 등이 이런 모임을 애호하는 부처로 꼽힌다. 중국인들은 문서가 지나치게 많고 회의가 번다한 공직사회를 비꼬아 문산회해(文山會海)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토론공화국을 만들겠다고 말한 이후 토론과 회의가 훨씬 늘어났다.
■ 그러나 6개월 전 복지부가 공개한 '2003 변화진단 워크숍'의 보고서는 참여정부의 코드인 토론문화에 대해 뜻밖에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지나친 참여 분위기로 공권력이 약화했으며 실질적 토론 없이 상층부 의사대로 결론이 도출되는 등 행정력이 낭비됐다는 것이다. 자료 낭독에 그치는 토론, 결과 없이 시간만 끄는 토론, 회의를 위한 회의가 문제다. 대표성 있는 의견 수렴을 위해 주제와 대상을 잘 선정하고 결론을 도출한 뒤 재토론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누구나 느끼는 일이지만 참석자가 달라지면 결론도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 며칠 전 행자부가 각 부처에 권고한 지침을 보면 불필요한 회의와 토론을 위한 토론은 아직도 많은 것 같다. '일하는 방식 개선지침'은 목적이 불분명한 회의는 줄이거나 없애고 지시나 정보전달형 회의는 이메일로 대체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스탠딩 회의와 회의시간 총량제 도입도 주문했다. "회의는 춤춘다"는 말처럼 원래 회의란 지루한 것이다. 그리고 제목이 없어 모이지 못하는 회의는 없다. "스커트와 스피치는 짧을수록 좋다"는데, 회의도 짧을수록 좋다. 잘 되는 집안은 회의할 일도 없다는 말이 맞다면 아예 회의를 할 필요도 없지만.
/임철순 논설위원실장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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