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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109>산수국의 실속과 수국의 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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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109>산수국의 실속과 수국의 허세

입력
2004.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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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참 많이 옵니다. 적당하게 내리면 더없이 반가운 것이 비이지만 언제나 지나치거나 모자라 걱정입니다. 과학이 끝없이 발전하는데도 여전히 큰 비 소식에 귀 기울이고 가슴 졸여야 하는 것을 보면 자연은 참 대단합니다.그래도 물을 받아내 품고 흘려보내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물길을 잘 뒀다면 비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상당히 피할 수 있을 것인데, 대부분의 화근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 인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가 너무 많이 오면 한창 피어날 여름 꽃에게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멀리 보면 숲이 물을 충분하게 머금은 일은 좋지만 당장 꽃가루받이를 도와줄 벌과 나비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해 애써 피운 꽃은 허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게다가 꿀은 물에 섞여 버릴 것이며, 강한 빗줄기에 자칫 꽃잎이 상하고 줄기는 늘어지는 일도 적지않을 것입니다.

비가 내리는 여름 숲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식물은 산수국입니다. 우거진 숲 속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무리지어 피어나는 산수국의 보랏빛이나 짙은 하늘빛 꽃송이는 언제나 가슴이 설레도록 아름답습니다. 특히 비오는 숲 속에서 드러나는 싱그러운 자태와 선명한 꽃색깔은 산수국만의 아름다움이지요.

산수국 이야기를 하려니 ‘산수국? 그럼 수국은’뭐지 하고 궁금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여름 숲에서 만나는 꽃은 산수국입니다. 원반처럼 모여 달리는 꽃차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종류의 꽃이 달립니다. 우선 원둘레에는 지름 1㎝ 정도의, 우리 눈에 잘 뜨여 제대로 된 꽃처럼 보이는 꽃들이 달려 있습니다. 그 안쪽에는 꽃처럼 보이지만 꽃잎이 확실하지 않아 영 제대로 된 꽃처럼 느껴지지 않은 자잔한 꽃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기능은 두 종류의 꽃이 정반대입니다. 가장자리 꽃은 결실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술과 암술은 퇴화되고, 꽃잎(실제로는 꽃받침입니다)만이 남아 곤충을 유혹하기만 하는 꽃입니다. 그래서 무성화(無性花)라고 합니다. 반면 안쪽 꽃은 불필요한 장식은 치워버리고 가장자리 꽃을 보고 찾아온 벌을 잘 이용해 실제로 꽃가루받이를 하고 결실하는 꽃, 즉 유성화(有性花)입니다.

이 유성화가 작은 것은 밀도를 높여 한번 벌이 찾아왔을 때 효율을 높이자는 것이고, 산수국 전체로 보면 두 종류의 꽃이 분업과 협업을 동시에 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셈입니다.

수국은 숲이 아니라 정원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수국의 진실을 알고 보면 허망합니다. 아름답고 탐스럽게 생긴 수국의 꽃차례는 모두 무성화만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겉만 화려하지 꽃의 존재 이유인 씨앗을 맺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 여름에 사랑하는 여자에게 수국같다고 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례입니다.

자신의 일을 하며 착실하게 효과적으로 결실해가는 산수국의 실속있는 지혜와, 허울뿐인 아름다움만 가진 채 미래를 기약하지 못하고 피어나는 수국의 허세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대비되는 삶의 모습인 듯 합니다.

이유미/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매주 A섹션에 연재하던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를 금주부터 B섹션으로 옮겨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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