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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고/예수와 지하드

입력
2004.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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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성인들에게 인기 있는 베스트 셀러는 'Left Behind(뒤에 남은 자들)'라는 기독교 복음주의 스릴러물 시리즈다. 최근 새로 나온 시리즈 열두 번째 편 'Glorious Appearing(영광의 재림)'에 따르면 예수는 지상으로 돌아온 뒤 기독교인이 아닌 자들을 한 데 모아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 속에 쳐넣는다. "예수께서는 그저 한 손을 약간 드셨을 뿐이다. 그런데 지상에서 웅 하며 틈이 갈라지더니 점점 더 벌어져서 마침내는 그들 모두를 삼켜버렸다. 그들은 굴러 떨어지면서 울부짖고 절규했다. 그러나 통곡은 곧 막혀버렸고 지상이 다시 닫히면서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이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6,000만 권 이상이나 팔렸다. '영광의 재림'은 마치 인종청소를 지극히 경건한 종교적 행위로 찬양하는 것 같아 혼란스럽다. 이슬람 교도가 이 소설의 이슬람판을 써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출판했는데 신이 비 이슬람 교도 수백만을 집단학살하는 것을 찬양하는 식으로 묘사했다면 아마 우리는 졸도할 것이다. 우리가 이슬람 근본주의가 불관용을 부추긴다고 본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제 우리 눈의 티끌도 제거할 때가 됐다.

이 소설에서 예수가 그저 말만 해도 적의 몸뚱아리는 쩍 찢어진다. "아무리 애를 쓴들 육신은 갈가리 찢기고 눈은 녹아내리고 혀는 흩어져 버린다. 잠시 후 똑 같은 저주가 말한테도 닥쳐 살과 눈과 혀가 녹아 내리고 기괴한 해골만 남는다."

이런 식의 피의 재림 이야기는 예수에 대한 미국식 해석에 변화가 생겼음을 반영한다. 점잖은 아저씨에서 피바다를 주관하는 군사적 메시아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호전적 기독교가 호전적 이슬람에 대치하는 형국이다. 근본주의는 어떤 형태가 됐든 자신과 같은 점잖고 경건한 부류와 지옥으로 치닫는 이교도들을 도덕적으로 엄격히 구분한다.

물론 이 소설의 독자가 비행기를 건물에 돌진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9·11 이후 국내외에서 이슬람 교도 수천 명을 교도소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평범한 미국인들이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죄수들을 고문하는 데 가담했다. 부분적으로는 죄수들에 대한 동정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을 이교도로 보고 예수가 이제 언제라도 그들의 혀와 눈을 녹여버리실 것이라고 기대하는 한 그런 사람들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나는 누구의 종교적 신념을 비웃을 생각은 전혀 없다. 수백만 미국인들이 '영광의 재림'이 하느님의 의지를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종교를 말 못할 금기사항으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이 나라에서건 사우디에서건. 나는 우리 선교사들이 세계가 다 눈 감을 때 수단 등 제3세계에서 구호활동 등 많은 일을 한 것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관용에 대해서도 항변해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

불관용이 종교적 신앙에 기초한 것이라고 해서 그저 무사통과시켜도 되는 것일까?

수없이 많은 비기독교신자들을 지옥에 던져버리는 식의 인종주의적 색채를 지닌 신을 믿을 권리는 있다. 그렇게 주장하는 책을 판매금지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베스트 셀러가 이교도에 대한 종교적 불관용과 폭력을 기꺼이 찬양할 때 우리는 당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식은 미국이 지지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신이 지지할 것 같지도 않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NYT 칼럼니스트/뉴욕타임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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