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5년은 한국해 표기가 형성단계(1700∼1735년)에서 정착단계(1735∼1790년)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기이다. 그리고 이 해에 한반도만 따로 그린 첫 지도가 프랑스 예수회 신부 쟝 뱁티스트 뒤 알드(1674∼1743)의 '중국통사'에 담겨 출판됐다.총4권으로 무게가 15㎏이나 되는 이 책은 중국과 티베트 그리고 한국의 풍습과 역사정보, 지도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지도는 '황여전람도(皇輿全覽圖)'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황여전람도는 프랑스예수회 선교사 레지(1663∼1738)가 강희제의 지시를 받아 1708년부터 1716년까지 중국전역을 측지해 만든 지도다.
뒤 알드 신부는 레지 신부가 보내온 이 지도와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중국통사'라는 책을 만들었다. 여기 포함된 조선전도는 조선 왕실에서 중국에 보낸 비장의 한국지도와 중국자료를 종합 비교해 만든 것으로 서양고지도 중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한 한국지도라고 할 수 있다. '중국통사'는 1736년 네덜란드, 1741년 영국, 독일 등 여러나라에서 재판된 것만 보아도 가치를 알 수 있다.
이 책의 조선전도에는 간도는 물론, 두만강 하류의 녹둔도가 우리 땅으로 분명히 표기되어 있다. 이 지도 이후 제작되는 대부분의 지도 역시 간도를 포함한 북방영토를 한국영토로 인정하고 있다. 필자가 가진 지도자료 중 최소 100여점 이상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지도의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울릉도를 'Fan-ling-tao', 울릉도 왼쪽에 위치한 독도를 'Tchian-chan-tao(千山島)'로 표기해 육지에 바짝 붙여 표시했다는 점이다.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또 주목할 점은 대마도를 한국영토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타베르니에 지도에도 나타나듯 서양지도 제작자들은 대한해협까지를 한국해로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대마도는 의심할 바 없는 한국영토였다.
함경북도 북부와 러시아를 그린 이 책의 다른 지도에서는 러시아의 동쪽바다에 해당하는 작은 해역에 'Mer du Japon'라고 표기했다. 지금의 동해는 한국바다이며, 이보다 더 북쪽 해역을 일본해로 인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본해'는 183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한국해'를 대체하게 된다.
/이돈수·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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