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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사는 89세 할머니 황명월-68세 '젊은 수양딸'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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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사는 89세 할머니 황명월-68세 '젊은 수양딸' 김연수

입력
2004.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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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이 더위에 어찌 와’라고 만류해도 일주일에 한두번은 어김없이 와, 그 먼 데서…. 이젠 딸보다 내 인생을 더 잘 알어.”황명월(89ㆍ금천구 독산본동) 할머니에겐 칠순이 넘어 얻은 딸이 한명 있습니다. 김연수(68ㆍ안양시 평촌)씨입니다. 같은 동네에 살던 김씨가, 슬하에 딸 하나를 두었지만 혼자 외롭게 사는 할머니를 눈여겨 보다 1993년 할머니 집을 찾아온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김씨는 금천구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하는 6070봉사단 회원으로 주변의 외로운 노인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있어요. 일주일에 한번씩 복지관에서 마련한 반찬을 할머니 댁에 가져다드리고 집안일도 돕고 말벗도 해드리지요.

누군가 내 말에 귀 기울여준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할머니는 김연수씨가 오는 날이면 아침부터 가슴이 설렌다고 해요. 평소에는 말이 없지만 김씨가 오면 미주알고주알 말도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지나온 인생이야기도 풀어놓게되거든요.

할머니는 고향인 충남 예산에서 살다가 서울에 있는 외동딸을 보기위해 57세때 상경했어요. 그런데 치매였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찾으러 간다고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됐고 그 때부터 생이별, 평생을 혼자 보내셨지요. 딸과, 할머니가 직접 핏덩이를 받은 외손주들이 있지만 대물림되는 가난에 딸도 독거노인으로 늙어서 지금은 연락도 잘 닿지않아요. 딸 이야기가 나오자 할머니의 눈이 갑자기 흐려지면서 “그(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 하십니다.

김씨는 할머니를 통해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고 말합니다. “할머니가 사는 반지하 전세방 앞에는 동네사람들이 늘 빈병과 폐품을 가져다 놓아요. 살림에 보태시라는 거지요. 그러면 할머니는 이것들을 팔아서 비누나 과자 등을 사서는 일일이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뭐하러 그러시냐고 하면 ‘나는 내 봉사하는 거여’ 하세요. 참, 반듯한 양반이구나, 하고 배우지요.”

김씨의 자원봉사 활동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처음 인연을 맺은 90년대 초만 해도 할머니 주변으로부터 ‘무슨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고 남편도 ‘그럴 정성 있으면 집안부터 챙겨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었죠. 그러나 진심은 통하는 법, 지금은 두 사람의 인연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

함께 한 세월이 긴 만큼 두 사람 사이에도 사연이 쌓여갑니다. 할머니는 아직도 96년도의 어느 오후를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하고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하세요.

“‘몸이 좋지않아 한동안 못볼 것 같다’며 팔뚝만한 고기를 냉장고에 넣어주고 가. 매일 조금씩 잘라 먹으라구. 어디가 아프냐고 해도 말도 안하는데 골목길 내려가는 뒷모습이 어찌나 헛헛한지. 세상에, 지금도 그때 뒷모습이 눈에 선혀.”

김씨는 그때 자궁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말을 안하니까 성당에 가서 물었지. 그랬더니 큰 수술 받고 입원해있대. 이 복없는 노인 때문에 이런 일 당하나 싶은 게 눈물이 쏟아져서 성당밖으로 나왔는데 길이 안보여. 주저 앉아서 한참 울었지.”

“평소에 집앞 나가는 것도 힘들어 하시는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입원실까지 오셨더라고요. 아, 이런 사랑이 나를 견디게 하고 살게 해주는구나, 가슴이 뭉클하데요.”

김씨는 3년 전 함께 사는 아들 부부를 따라 안양시로 이사했습니다. 꽤 먼 거리이지만 아직도 금촌노인복지관 봉사자로 일하는 건 이젠 친어머니와 다를 바 없는 할머니를 뵙기 위한 거지요. “내 속으로 낳지는 않았지만 내 새끼보다 더 귀하다”는 할머니. “제발 아프지만 않고 여생을 건강하게 보내셨으면 좋겠다”는 수양딸. 인터뷰 내내 서로 손을 꼭 부여잡고 있던 두 사람은 딸이자 어머니, 친구이자 동반자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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