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무더위 계절을 맞아 극장이나 TV에서 공포영화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한여름 밤, 어둡고 냉방이 잘 된 극장이나 거실에서 푸르스름한 영상을 뚫고 갑자기 나타나는 끔찍하고 무서운 장면은 상상만 해도 오싹한 느낌이 든다. 이렇듯 공포영화는 무더위를 쫓는 좋은 피서법이다. 왜 그럴까? 공포에 대한 신체ㆍ정신적 반응을 살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공포라는 감정은 내가 죽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증폭된다. 원래 공포에 대한 인체 반응은 원시시대부터 인간이 자연의 위협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 요소였다.
인간은 맹수의 습격 같은 위험한 상황에 닥치면 살아 남기 위해 ‘싸울 것인가 도망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방어 반응’(fight or flight reaction)을 작동시킨다. 여기에는 대뇌 깊은 곳에 위치한 변연계의 송과체와 시상하부가 주요 역할을 한다. 송과체는 자극을 종합해 정말 위험한 상황인가를 파악해 적절한 대처 반응을 시작하도록 하고, 시상하부는 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율신경, 즉 우리 몸에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신경 중 하나인 교감신경의 작용으로 인해 우리는 공포영화를 보면서 시원하고 오싹한 느낌을 받는다. 교감신경이 작동하면 동공은 커지고 맥박이 빨라지면서 온 몸에 털이 곤두서고, 말초혈관은 수축되며 식은 땀을 흘리게 된다. 이런 반응은 근육에 모든 힘을 집중시켜 맞서 싸우거나 빨리 도망가기 위한 몸의 매커니즘이다. 결국 심한 운동 없이도 교감신경이 작동해 땀을 흘리게 되고 이 땀이 식으면서 오싹함과 시원함을 느끼는 것이다.
공포영화가 재미있는 또 다른 이유는 적절한 각성으로 인한 쾌감 때문이다. 지나친 각성은 불쾌감을 주지만 각성 수준이 너무 낮아도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때로는 화끈한 공포체험을 즐기는 것인데, 공포영화 뿐 아니라 무서운 놀이기구나 번지 점프 등을 즐기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공포 체험이나 번지 점프 등을 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므로 이를 잘 해내고 나면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을 가지는 정신적 이점도 있다. 그리고 공포영화를 볼 때 극도의 긴장감 속에 있다가 끝나고 나서 드는 안도의 한숨과 편안함은 더위로 인한 짜증과 불쾌감을 편안하게 달래준다.
이렇게 한 여름의 더위와 공포영화는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갑자기 살인마가 튀어나와 흉기를 휘두르는 스플래터 영화보다는, 치밀한 줄거리 속에 섬뜩한 음모와 서스펜스가 숨어있는 심리 호러영화를 더 즐긴다. 요즘 개봉되는 영화들을 보니 심리 호러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기대가 크다.
박원명/가톨릭대 의대 성모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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