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34)씨는 저항 능력이 부족한 부유층 노인들과 젊은 윤락 여성들만을 골라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했다. 그는 특히 범행을 계속하면서 시신을 불태우거나 토막 내 유기하는 등 점점 더 잔인하고 치밀한 방법을 동원했다. 경찰은 "범인은 면밀한 준비 과정을 거쳐 범행을 벌였으며 범행 후에도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
유씨가 처음 살인을 저지른 것은 지난해 9월24일 밤. 9월11일 교도소에서 출소한 그는 이날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2층 단독주택에 침입, 모 대학 명예교수인 이모(73)씨와 부인(68)을 둔기로 내리쳐 살해했다. 당시 경찰은 잔인한 수법으로 미뤄 원한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지만 용의자를 찾아내지 못하고 수사는 답보를 계속했다.
이로부터 보름여가 지난 10월9일 유씨는 종로구 구기동의 재력가인 고모(61)씨 집에 침입해 고씨의 어머니(85)와 부인(60), 아들(35) 등 일가족 3명을 역시 둔기로 머리를 내리쳐 숨지게 했다.
같은 달 16일 이번엔 다시 강남구 삼성동의 부호 최모(71)씨 고급주택에 들어가 최씨의 부인 유모(69)씨를, 11월18일에는 종로구 혜화동의 고급 단독주택에 들어가 집주인 김모(87)씨와 파출부 배모(53·여)씨를 살해했다.
유씨는 부유층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알려진 동네를 고른 뒤 길가에서 멀리 떨어졌거나 정원이 넓어 외부에서 집안 상황이 잘 파악되지 않는 단독주택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또 첫 범행인 신사동 사건을 제외하면 가족들이 외출해 노인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점심시간이나 그 전후를 이용해 집에 침입하는 등 치밀한 사전 답사를 통해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4집 모두 무인경비시스템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는 것도 우연으로 보기는 힘들다.
4건의 부유층 살인사건이 1주일 이상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것도 유씨가 치밀하게 범행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일정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유씨는 범행장소에 범행도구는 물론,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아 수사 경찰관들의 애를 태웠다. 현장의 발자국 정도가 남아 있던 유일한 단서였다. 그는 당초 부유층 노인들을 노려 침입했지만 범행 현장에 다른 사람이 있을 경우 모두 함께 살해하는 잔인한 면모를 드러냈다.
그는 또 금품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아 부유층에 대한 '증오범죄'임을 나타냈다. 그러나 마지막 혜화동 살인사건에서는 금고문을 뜯으려는 흔적을 남겼다. 이는 경찰의 수사 방향에 혼선을 주려고 했거나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 마지막 혜화동에서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살해 후 집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젊은 여성 토막살인
유씨는 지난해 12월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자신의 뒷모습이 담긴 폐쇄회로TV 화면을 확보하고 수사망을 좁혀오자 노인 살해를 잠정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지난해말 전화방에서 만난 여성과 교제를 시작했던 그는 올해 초 이 여성이 자신이 전과자임을 알게 된 후 결별을 선언하기 전까지 범행에 나서지 않았다. 유씨는 동거녀가 도망간 직후인 3월께 동거녀와 동종업계의 윤락여성들을 대상으로 다시 잔인한 연쇄살인 행각을 시작했다.
그는 출장마사지업체에 전화를 걸어 젊은 여성을 자신의 거주지 인근으로 보내달라고 한 뒤 약속 장소로 나온 여성을 마포구 노고산동 자신의 전세 오피스텔로 유인, 살인을 저질렀다. 직접 오피스텔로 부를 경우 업체에 주소가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오피스텔에서 3월부터 7월까지 약 4개월 동안 모두 11명의 출장마사지 종사 여성들을 살해했다. 특히 7월 들어 13일간 모두 3명을 살해했다.
11명이나 살해됐음에도 불구하고 비명소리 등 이웃들이 범행을 눈치챘을 만한 상황이 전혀 없었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유씨가 위조한 경찰 신분증과 남대문시장에서 구입한 수갑을 갖고 다녔던 점으로 미뤄 여성들을 오피스텔로 유인하거나 살해하기 위해 무력화시키는 과정 등에서 경찰 행세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씨는 종종 경찰 행세를 하며 출장마사지 종사 여성들을 위협해 돈을 갈취하기도 했는데 이 때에는 살인현장인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멀리 떨어진 영등포나 인천 등지에까지 가서 범행을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는 여성들을 살해할 때에는 유전자 감식을 우려해 성관계를 갖지 않았으며 살해한 뒤에는 토막을 내 시체를 유기하는 등 경찰의 수사를 따돌리기 위해 주도면밀한 사후처리를 했다.
시체를 유기하기 쉽도록 15∼18개로 잘게 자르는 잔혹한 면모를 드러내는가 하면 이렇게 토막 낸 시체의 신원이 쉽게 드러나지 못하도록 열 손가락의 지문을 칼로 도려내는 끔찍함도 보였다. 유씨는 자른 시체 토막들을 검은 비닐봉지로 5∼10겹씩 싼 뒤 6∼7차례에 걸쳐 택시를 타고 인근 서대문구 봉원동 봉원사 근처로 갖고 가 야산에 묻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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