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우리 생활 속에서 없어져 가는 것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우리 시대는 유행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졌다가 한 순간 없어지는 것들이 허다하다. 사람들은 새롭게 생겨 나는 것에는 민감하지만 없어지는 것에는 무디다.그리고 그 존재의 필요성까지 잃어버린다. 필요하지 않다고 없어져야 하는 것인가? 원하는 사람이 소수면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인가?
내가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 80년대 초까지도 우리 나라에는 여러 종류의 사과가 있었다. 다 기억 할 수는 없지만 몇 개 예를 들자면 국광, 홍옥, 인도사과, 골덴사과, 부사 등이 있었다.
그러나 96년 귀국해보니 과일가게에서 찾을 수 있는 건 부사와 수입사과 한두 종류 뿐이었다. 골목 골목의 작은 가게에서도 찾을 수 있던 다양한 종류의 사과가 한두 종류로 정리돼 버렸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없어져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음식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할머니나 어머니의 손맛 역시 누군가가 전수받지 못하면 시간과 함께 사라진다. 검게 자연 건조 되고 항아리 속에서 하얀 당분꽃이 핀 곶감도 보기 좋게 주홍빛으로 기계건조 된 곶감에 밀려났다. 자연 바닷바람에 바싹 말라 기름기가 흐르던 굴비도 반 건조해서 냉동상태로 판매 되고 있다.
단지 음식뿐만이 나이라 우리들의 옷도 유행이라는 전제 아래 사라지는 것이 많다. 페미닌한 스타일이 유행이라고 그 이외의 스타일들은 백화점에서 한 순간 사라져 버린다.
개개인들이 아무리 다른 스타일을 원한다 해도 유행에 맞지않으면 왕따당한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양이 줄어들어도 존재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와 우리 후손 사이의 더 많은 갭이 생기지 않을까?
가까운 일본을 보자. 일본 출장을 가면 난 가끔 수퍼마켓을 간다. 그 곳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졌지만 내가 찾던 것들을 적으나마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새로운 것이 나와도 옛것이 수퍼 어딘가에 존재 한다.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소수의 사람을 위해…. 그것이 배려이고 진보와 발전을 위한 토대이다.
어떤 분들은 변화는 곧 진화라고 말하겠지만 내가 정말 맛있게 먹었던 인도사과와 흰 꽃이 잘 핀 곶감을 언젠가 생길 내 자식에게 먹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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