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16일 발표한 카드 특별감사 결과는 "부실한 감독을 문제 삼을 수는 있어도, 실패한 정책에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감사원은 카드대란을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규제개혁위원회 등 4개 기관이 함께 빚어낸 총체적 실패작이라고 결론을 내리면서도 당시 기관장 등 책임자들에게는 '면죄부'를 안겨줬다.
감사원은 대신 금융감독기구 개편이라는 시스템 개혁을 해법으로 내놓았지만 정작 이 작업을 추진중인 정부혁신 지방분권위원회는 "감사원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결국 이번 특감은 관련자 징계도, 시스템 개혁도 이뤄내지 못하는 '무용지물 감사'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특감에서 드러난 총체적 정책 실패
감사원은 금감원, 금감위, 재경부, 규개위 등 4개 기관을 카드 사태의 '공범'으로 지목했다. 카드 정책과 감독을 맡은 이들 기관이 무분별하게 카드를 사용한 이용자, 무리한 확장 경영을 일삼아온 신용카드사 등과 합작해 신용카드 부실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이라는 판단이다.
집중 포화를 맞은 곳은 역시 금감원이었다. LG카드가 2001∼2003년 업무보고서에 최대 1조506억원의 연체채권을 정상채권으로 둔갑시켜 여유자금을 부풀렸음에도, 금감원은 신용카드사의 42개 평가 항목 중에서 11개에 불과한 계량 지표만으로 경영 실태를 평가함으로써 화를 초래한 것으로 지적됐다. 금감위는 2003년1월 적기시정조치 요건에 연체비율을 추가했다가 신용카드사들의 편법 대환 대출을 조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재경부는 2001년4월 금감원으로부터 현금대출 취급 비중을 50%로 감축해달라는 요구를 받고도 1년간 묵살했고, 규개위는 그 해 7월 금감위가 신청한 신용카드 회원 가두모집 금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책임이 인정됐다.
책임질 사람 1명 뿐이냐
감사원은 이 같은 문제점을 적시하면서도 당시 기관장이나 업무 담당자에 대해선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았다. 97년말 환란 당시 강경식 경제부총리가 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데다 정책 실패는 시스템 결함에 따른 측면이 강한 만큼 문책보다는 정책 개선과 감독 기구의 개편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특히 "신용카드 부양책은 내수 진작과 투명한 거래 관행 정책의 긍정적인 측면도 많았다"며 "정책이 완화 위주로 변했다고 해서 감독마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밝혀 정책 실패보다 감독 소홀에 더 무게를 실었다. 금감원에서 카드 담당 국장과 부원장보를 지낸 부원장 1명에게만 '인사 자료 참고 통보' 조치를 하는데 그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카드 활성화 초기인 99년 무렵 '강봉균 재경부장관(현 열린우리당 의원)-이헌재 금감위원장(현 부총리)' 2000∼2001년 신용카드 사용 권장기의 '진 념 재경부장관 이근영 금감위원장 강철규 규개위원장' 등 전·현직 기관장들은 물론 나머지 실무자 전원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졌다.
당장 시중의 여론은 카드 대란을 야기시켰고 400만 신용불량자들의 원성이 드높은 상황에서 책임질 사람이 단 1명 뿐이냐고 따져 묻는 분위기다. 카드대란의 시발점을 99년5월 단행된 현금서비스 한도(70만원) 폐지로 볼 경우 재경부장관과 금감위원장을 거쳐간 인물만 10명 안팎에 이르는 데다 당시 실무진까지 범위를 넓힐 경우 수십여명에 달한다.
이들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작업이 쉽지 않고, 게다가 누구에게 더 큰 책임을 물을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감사원은 지극히 현실적인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번 특감이 이미 예고됐던 대로 '소신 없는 감사' '눈치 보기 감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 감사원, 개선안 제시
감사원이 16일 제시한 금융감독체계 개선방안은 단기적으론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3개 기관에 분산된 기능을 조정하고, 장기적으로는 금융감독체계를 통합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현재 금감원이 현재 행사하는 상당 부분 권한을 금감위로 이관해야 한다는 대목이다. 비록 감독체계 개편작업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혁신위원회가 감사원 주장에 난색을 표시했지만, 재경부-금감위-금감원간 권한과 신분이 직결된 사안이라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기 힘들 전망이다.
감사원은 카드대란의 원인을 금융감독기구의 역할과 기능 중복으로 돌렸다. 현행 금융감독체계는 재경부가 경제·금융정책 금감위는 금융감독정책 금감원은 금융감독집행을 각각 담당하고 있는데, 특히 금융부실 등 현안이 터지면 기관간 기능중복과 비협조로 신속대응이 곤란해 카드대란처럼 '병'을 더욱 키우게 된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특히 문제삼은 부분은 금감위와 금감원의 관계다. 2000년1월 체결된 '금융감독업무분장약정(MOU)'에 따라 금감원은 금감위로부터 상당한 감독권한을 위탁받아 행사하고 있는데, 감사원은 이 같은 위탁행위 자체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금감원이 수행하고 있는 금융감독규정 제·개정 각종 인허가 불공정거래 조사 및 시장관리 공시 및 회계감독 업무 등은 민간(금감원)에 위탁할 수 없는 정부(금감위) 고유업무인 만큼, 즉각 금감위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감사원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금감위 조직·기능은 대폭 확대하는 대신, 금감원 조직·기능은 대폭 축소하는 것을 의미해 금감원의 큰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감사원은 장기적으론 금감위와 금감원을 중립적 정부기구로 통합시키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하복동 금융·재정 감사국장은 "금융산업의 겸업·대형화 추세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려면 통합감독기구는 민간기구가 유리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합법성과 책임성 확보 차원에선 정부기구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관치금융 재현과 전문성 확보 어려움 등 문제점은 전문직의 민간개방과 아웃소싱 등으로 보완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감사원 권고안에 대해선 정부혁신위도 소극적이다. 윤성식 정부혁신위원장은 이날 "감사원 권고안을 받으면 진지하게 검토하겠지만, 현행 금융감독기구체계의 큰 틀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감사원 방안을 수용하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 관련기관 반응/ "왜 우리만…" 금감원, 불만
감사원 특감 결과가 발표되자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등 관련 기관들은 책임에 따른 문책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분위기였으나 금감원은 감사원의 조직개편 권고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재경부 김광림 차관은 이날 오후 감사원 특감 관련 브리핑에서 "카드사가 적절한 신용평가 없이 과도하게 신용을 공여해 문제 발생의 1차적 원인을 제공했으며, 정부도 이러한 카드사의 잘못된 행태에 시의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금감원 금감원은 금감위와 공동으로 "카드사 유동성 위기를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공식 입장을 냈지만, 편치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외형상으로는 4개 기관이 동시에 '기관 경고'를 받음으로써 카드 부실의 총대를 메는 것은 피했지만, 내용상으로는 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이 가장 무겁게 인정됐기 때문이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감사원 특감이 금감원에 타깃을 맞추고 있고 재경부와 금감위 등에 대한 부분은 여론의 반발을 우려해 구색 맞추기 식으로 끼워넣은 정도에 불과하다"며 "특히 유독 금감원만 담당자가 사실상의 징계 조치를 받은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금감원 노조는 "감사원이 금융감독원의 업무수행에 대해 사실상 위법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은 금감원 조직과 직원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 이라고 반발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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