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현의 세 번째 연출작 ‘내 남자의 로맨스’는 어쩌면 행운을 안은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영국의 로맨틱 코미디 ‘노팅힐’을 공공연히 참조한 이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김정은이 나오고, 텔레비전 드라마로 폭발하고 있는 그녀의 인기가 스크린에 옮겨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이 영화에서 김정은이 보여주는 매력은 기존의 그녀 이미지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놓는 식이지만, 이게 또 강력한 효과가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사는 건 그냥 그렇지만 기운을 내어 다시한번 씩씩하게 걸어가는 젊은 여자 역으로 제격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 김정은은 지하철 역무원이 직업인 현주로 나와 영화배우의 구애를 받는 남자친구 소훈(김상경)을 잃을지도 모를 위험에 처한다. 그런 여주인공의 생활을 다루며 ‘내 남자의 로맨스’는 정해진 코스를 탄다. 관객의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상투적이지만 그걸 익숙한 매력으로 치환시키는 함정이 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자들만큼 잘나지 못한 보통여자가 느끼는 열패감과 환상을 동시에 적당히 주물러주면서, 이 영화는 사랑에만 의지해 살고 싶었던 인생의 궤도를 한번 더 크게 돌려 자기주변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해서도 슬쩍 눈길을 주게 되는 주인공의 정신적 성숙도 건드리고 있다.
물론 그건 ‘노팅힐’이나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익히 봤던 것이지만, 또 ‘내 남자친구의 로맨스’는 그 영화들에서 배어나왔던 특정 공간과 사람들의 느낌과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이 뻔한 로맨틱 코미디는 바로 그 뻔한 요소를 익숙함으로 둘러치는 맨 얼굴의 대중영화 꼴을 갖고 있는 것이다.
편견일지 모르지만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길 수 있는 판타지 영화라면 ‘해리포터’ 시리즈는 왠지 아이들이 더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매년 겨울 서로 경쟁하면서 동시에 흥행했던 ‘반지의 제왕’ 연작이 대단원을 맺은 후에 한 시즌 늦게 개봉하는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이 시리즈의 골수 팬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점점 어른들을 위한 성숙한 동화가 돼가는 분위기를 풍긴다.
‘이투마마’ ‘위대한 유산’을 연출한 멕시코 출신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메가폰을 잡은 ‘아즈카반의 죄수’는 ‘나 홀로 집에’를 연출한 크리스 콜럼버스의 ‘해리 포터’ 전작 두 편보다 어둡다. 부쩍 커버린 열세 살 해리는 마법 지팡이를 휘두르고 신기한 투명 망토를 두른 채, 미숙한 자신을 시험해가며 성장해 간다.
어드벤처 성격이 강했던 전편과는 달리 이 영화는 뻐근한 성장담이 골격이다. 근거 없는 편견으로 가득찬 주위 환경과 근절되지 않는 악에 갇힌 채, 우리의 주인공들은 서서히 세상의 밝음과 어둠을 이해하고 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좀 더 인간적인 주제들이 화면에 깔리면서 ‘아즈카반의 죄수’는 우중충한 영국의 날씨를 활용한 그늘이 있는 스펙터클로 치장된다. 아이들의 육체적인 성장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성장까지 지켜보면서 호흡은 완만해지고 남는 여운도 진해진다. 단순무구한 첫 편의 스펙터클을 그리워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리 마법사라지만 이 아이들도 세상의 쓴 맛을 봐야 하는 것을.
김영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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