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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민주화의 현장-21세기 남미를 가다]<2>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의 명암-칠레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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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민주화의 현장-21세기 남미를 가다]<2>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의 명암-칠레②

입력
2004.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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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근교의 태평양이 내다보이는 천하절경의 바닷가 이슬라 네그라 언덕에는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세계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별장이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 서면 "이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으면 나라도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현재 이곳은 그의 탄생 1백주년을 맞아 세계 각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공산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했지만, 중도포기하고 인민연합을 결성하여 사회당의 살바도르 아옌데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일등공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쨌든 아옌데는 집권 후 칠레의 주수입원인 구리광산을 국유화하고 친노동적인 정책을 펴나가다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해 대통령궁에서 죽음을 당했다. 산티아고 중심가의 모네다 대통령궁의 벽에는 아직도 당시의 포탄 자국들이 그대로 남아 비극의 역사를 증언해주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옆 거리에는 아옌데의 동상이 세워져 민주화 이후 이루어지고 있는 '칠레판 역사 바로 세우기'를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피노체트는 집권 후 무자비한 인권탄압으로 인간백정이란 별명을 얻었지만 동시에 당시로는 이례적으로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즉, 전두환 정권처럼 철권통치와 경제적 자유화라는 일견 어울리지 않는 두 얼굴의 정책을 동시에 편 것이다. 그 결과 칠레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처럼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지 않고 상대적으로 안정된 경제발전을 유지해온 반면 빈부격차가 급격히 심화하는 등 신자유주의의 빛과 그림자를 경험해야 했다.

피노체트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 중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국민연금을 민영화한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이다. 특히 이 같은 정책은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국민연금의 적자누적 전망과 관련해 국민연금의 개혁방안으로 논의되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티아고 시내 곳곳의 현대식 새 건물과 공사현장들은 칠레의 경제적 활력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출퇴근 시간의 교통체증은 차량의 증가로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칠레는 중남미의 기준으로 볼 때 경제가 1980년대 후반 이후 상대적으로 꾸준히 성장해온 대표적인 사례로 주목 받고 있다. 민영화 지지론자들은 칠레의 이 같은 경제성장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아온 국민연금의 민영화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연금의 민영화가 과도한 사회보장지출의 완화와 재정적자의 해소, 기업분담금 폐지로 인한 기업투자의 확대, 연금 민영화에 따른 국민저축의 확대, 연금기금회사들의 투자에 따른 자본시장의 안정과 투자 확대 등을 가져와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보장지출로 인한 재정적자 누적과 경제침체, 이에 따른 복지 지출 수요 증대라는 악순환을 겪어온 많은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대조적이라는 주장이다.

1980년 입법으로 개인적립식 연금제도를 도입하여 1924년 이후 근 60년간 시행되어온 공적 연금제도를 대체하기 시작한 국민연금의 민영화 개혁은 사실상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거의 혁명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칠레 노동부의 나디아 토바르 국장팀은 필자에게 파워 포인트로 정리된 50쪽 가량의 보고서로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개혁의 핵심은 "고전적 사회보장"에서 "개인자본화 보장"으로 이행한 것이다. 고전적 사회보장은 연대, 통일, 보편성, 그리고 통합을 강조하는 반면, 개인자본화 보장은 재분배적 최저공적연금, 개별 자본기여기금, 그리고 자발적 보충연금으로 구성된다. 즉 개혁은 공적·사회적 복지로부터 민영화와 개인적 복지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노동자들은 민영의 연금기금회사(AFP: Administradoras de Fondos de Pensiones)에 강제적으로 가입하되 보험수익에 따라 AFP를 선택해 자신이 원하는 만큼 연금에 가입해 연금을 내는 것이다.

AFP는 이렇게 조성된 연금을 국내외에 투자하되 그 경영을 국가가 엄격히 관리한다. 결국 자신의 노후연금을 자신이 선택해 투자하는 것으로, 민영화 비판론자들로부터 일종의 강제된 개인저금에 불과하며 연금의 또 다른 기능인 사회복지와 소득재분배 기능은 사라진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AFP가 최저생계비를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 정부가 그 차이를 지급하기 때문에 사회복지를 완전하게 민영화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칠레의 국민연금 민영화의 내용과 과정을 살펴보면 그 극단성과 이를 밀어 붙여 정착시킨 피노체트 정권의 강력함을 실감케 된다. 그리고 이 제도가 민주화 이후 중도좌파 연합인 콘세르타시온(Concertacion) 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어쨌든 칠레의 민영화 복지개혁은 특히 복지국가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많은 복지 연구자들의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칠레의 연금개혁이 경제성장의 원인인가 아니면 역으로 경제성장 덕택에 연금개혁이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있는 것인가, 파격적인 연금개혁으로 국가는 재정적자로 해방되었으나 노동자들의 복지는 과연 증가하였는가, 민영연금제도는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속될 것인가, 경제의 침체기에는 오히려 재정과 복지의 이중 위기를 배태한 제도는 아닌가 등이다.

필자가 보기에 특히 우려되는 것은 경제위기이다. 복지제도란 경제위기 시 가장 필요한 것인데 칠레의 복지제도는 경제위기 시 복지연금이 투자해 놓은 것들이 함께 붕괴되어 사회복지 자체가 함께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다. 자전거가 서면 넘어지기 때문에 계속 달려야 하는 것처럼 경제가 계속 위기 없이 성장하기만을 빌어야 하는 것이 칠레연금제도의 운명이다. 이런 점에서 칠레의 민영연금제도를 탁월한 성공이라고 평가하기는 너무 이른 것 같다.

/마인섭 성균관대 교수

협찬:삼성전자

■ 노동부 토바르 국장팀 인터뷰

―칠레는 소득불평등의 문제가 심각한데 연금개혁으로 불평등이 더 확대된 것은 아닌가.

"AFP(연금기금회사)가 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있고 그 과실이 분배되어 불평등이 오히려 완화하고 있다. 또 정부가 부실한 AFP 가입자들에게 최저생계비를 보충해주는 제도가 있고, 민주화 이후의 정부들은 취약계층에 대한 보조를 확대하고 있다."

―혹 경제가 침체에 빠져 AFP의 수익구조가 나빠지면 연금급여에 문제가 발생하고 따라서 정부재정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현재 칠레 경제는 신자유주의 경제개혁 이후 남미 어느 나라보다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산업구조도 다양해지고 있어서 장래에 큰 위기는 없을 것으로 본다. AFP의 활동이 자본시장의 안정과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민영연금제도의 혜택이 작은 노동자들의 저항은 없는가.

"민주화 이후에도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는 불만을 갖고 있는 것 같으나 집단적인 운동이나 저항은 아직 없다. 최근 노동조합이 활성화하고 노동운동도 있으나 그것도 아직은 시작 단계다."

―AFP와 그들이 투자하는 기업 사이의 유착과 부패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정부가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고 아직 그런 부패의 사례는 없었다. AFP는 스스로 경영을 효율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유착이나 부패의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칠레는 남미에서 매우 유럽적인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복지제도는 반대인 것 같다.

"그렇다." (웃음)

―복지담당자가 아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현재의 연금제도에 만족하나.

(웃으면서)"아니다(이 답변은 농담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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