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아픔 / 박경리 지음이룸, 1만2,000원.
그의 문학은 소설 ‘토지’로 절정을 찍고, 에세이를 통해 심연에 다가선다. 그 심연은 생명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가이없는 애정이다. 그는 풀어 쓴 글로, 긴장의 시어들이 미처 건져내지 못한 생명에의 외경과 처연한 아름다움을 구원한다. 노 작가 박경리씨의 생명에세이 ‘생명의 아픔’이 책으로 나왔다.
책에 담긴 29편의 글은 ‘가이아’의 지구생명체론을 뛰어넘는, 범 우주적 생명의 노래들이다. 작가의 말처럼 한 마디로 “생명은 아름답다”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굴절된 이성과 합리, 근대의 정신을 준열히 꾸짖는다. “문화의 지류인 문명이 주류로 변할 때, 생존과 무관한 잡동사니는 범람하게 마련”아닌가.
그 지류인 ‘인류의 달나라 여행’을, 파괴된 지구를 복구하고 뚫린 오존층을 꿰매는 주류보다 우선시하는 과학의 외도를 비판한다.
작가에게 생명외경은 영성과의 교신을 희구한 샤머니즘과 같은 민족사상의 근원이다. 그의 시선은 “조상들의 도자기에는 꽃병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는 데”에 닿는다. 경대보에서 수젓집, 방석, 의복, 버선에 이르기까지 온통 꽃이고 상여이며 와당, 사찰의 문살에도 꽃천지인데 정작 꽃병이 없었던 것이다. 살아있는 것에 대한 아낌이다.
작가는 ‘멋’이라는 단어의 의미적 퇴화에 가슴아파 한다. 언어라는 게 시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변천에 따라 뜻도 변하지만, 그 언어 속에 담긴 치열한 소망과 절도의 마음까지 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작가에게 멋은 ‘창조의 원형’이다. “(그 멋은) 불교 표현을 빌리자면 정토의 장엄을 관찰하는 데서 생겨나는 균형”이다. 그것이 서구사상을 본으로 한 미학체계와, 시각적인데 편중된 유물적 관점으로 위축되는 것이 못마땅하다.
“나는 철두철미한 반일작가”라는 작가의 말처럼, 글은 ‘일본인’이 아닌 ‘일본’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우리민족의 꽃에 대한 연민에다, 식물을 불구로 만들어 분재하는 일본의 ‘도코노마’(분재) 전통을 대비시킨다.
‘멋’에 해당하는 일본어 ‘이키에(粹)’가 에로티시즘과 그로테스크를 담고 있는 미감이어서 일본의 축소지향과 같은 병적 미의식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말미에 작가는 청계천 복원에 대한 유감도 거침없이 토해내고 있다. 수년 전 강원 원주의 ‘토지문학관’에서 환경학자들과 벌인 토론회를 통해 처음 이슈화한 것이다. 10년, 20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 본 그 생명사업이, 정치 잇속이 개입된 개발사업으로 전락한 데 대해 “발등을 찧고 싶을 만치 후회와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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