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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찜질방 헌법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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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찜질방 헌법재판

입력
2004.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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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는 요즘 같은 한여름에도 땀 흘릴 일이 없을 정도로 한랭한 북유럽과 시베리아 등지에서 많이 즐긴다. 사우나란 말도 핀란드식 증기탕을 일컫는다. 이 때문에 발상지도 그 쪽인 줄 알지만, 중앙아시아 흑해 기슭에 살던 스키타이 족이 처음 고안했다고 한다. 지금의 러시아 남부와 독일까지 문명의 자취를 남긴 스키타이 민족은 아시아 인종이니, 사우나도 원래 동양적 문물인 셈이다. 뒤늦게 맛 들인 우리가 내로라 할 사우나 문화를 자랑하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닌 성 싶다. 물론 우리의 사우나 열기는 목욕조차 제때 못하던 궁핍한 시절의 한(恨) 때문이란 그럴듯한 풀이도 있다.■ 실용적 관점에서 보면, 겨울은 한대처럼 춥고 건조하고 여름은 또 열대처럼 무더운 유별난 기후가 방방곡곡 운동장 같은 사우나 시설이 들어서게 했을 것이다. 온 가족이 함께 목욕하던 접촉형 문화 전통도 한몫 했다. 찜질방은 이 한국형 사우나의 결정판이다. 터키식 증기탕과 핀란드식 원적외선 사우나에 고유한 한증막 불가마를 접목시키고, 옥돌 황토방 등 온갖 기발한 발상을 하는 것은 추종을 불허한다. 목욕을 즐기는 일본인들이 한국 관광코스에서 사우나를 최고로 칠 정도다. 그러나 찜질방이 국민적 휴식공간이 된 결정적 계기는 역시 남녀 장벽을 허문 것이다.

■ 외국 같은 혼욕은 아니지만, 남녀 구분 없이 가벼운 옷만 걸친 채 자유로이 드나들게 한 것이 접촉형 전통을 되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뜨거운 바닥에 몸을 지지는 것을 좋아하는 부녀자들과 일이나 술에 지친 직장인은 물론, 시부모 며느리 손자까지 3대가 한나절 편하게 어울려 쉴 수 있는 가족 휴식공간이 된 것이다. 헬스장 사우나가 유행이지만, 서민들에게는 이 곳만큼 부담 없이 오붓한 여유를 즐길만한 곳이 별로 없다. 찜질방의 청소년 탈선 등이 문제 돼 정부가 남녀 장벽을 다시 도입할 계획을 밝히자 여론의 반발이 뜻밖에 거센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고 본다.

■ 반대여론은 개념부터 낡은 풍기문란을 이유로 서민의 가족 휴식공간을 빼앗는 것은 시대착오적 횡포라고 흥분한다. 언뜻 이거야 말로 헌법소원 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탄핵이나 행정수도에 관한 헌법적 논란은 정치싸움 성격이 짙지만, 찜질방 논란은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과 훨씬 직접적으로 관련 있다고 볼 만 하다. 헌법재판소도 이런 순수한 과제를 반길 듯 하다. 뒷날 대통령을 지낸 로만 헤어초크 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장은 여야가 다투던 정치적 사안이 거듭 넘어오자, "정치가 해결할 문제를 떠넘기지 말라"고 꾸짖은 적이 있다. 우리 헌재도 한 말씀 하실 때가 됐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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