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희중 도서관에서는 니카자와 게이지의 10부작 일본만화 ‘맨발의 겐’ 대출을 언제부턴가 중지했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의 참상과 전쟁의 광기를 고발한 이 만화는 워낙 인기가 좋아 한번 대출되면 학급에서 돌고 돌아, 도서관으로 반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는 좋다고 이름난 책을 빌리려고 도서관 문 열리기를 줄서 기다리는 학생이 적지않다.경희중 아이들이 별나게 책에 관심이 많은 걸까? 국어 교사이면서 담임에다, 도서관 업무까지 맡아보고 있는 백병부씨는 “다른 학교보다 조금 나은 정도일걸요”라고 말했다. 도서관이 ‘개점휴업’이라거나 ‘학교괴담’의 무대라는 건 약간 과장됐다. 컴퓨터에 빠져 청소년들이 책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물론 이나마 도서관이 운영되는 건 이중업무를 감당하며 사서 전공도 아닌 일반교사들이 ‘도서관 지키기’에 애쓰는 덕이 크다.
올해 3월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발족된 ‘학교도서관 문화운동 네트워크’는 지난 주에 학교도서관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교육방송 수능강의 지원을 위해 이미 책정됐던 학교도서관 개선 예산 중 100억원을 삭감한 교육부의 정책의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일당 3만원 안팎에 고용된 비정규직 사서의 한숨도 들렸다.
며칠 후 ‘책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이 순천, 제천, 진해, 제주, 서귀포에 이어 15일 청주에서 새 기적의 도서관을 연다. ‘아름다운 재단’은 현암사 지원으로 8월부터 내년 2월까지 도시빈곤지역이나 산간오지의 작은 도서관에 도서지원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청소년 독서문화를 지탱하는 대들보라는 학교도서관ㆍ지역도서관을 살리기 위해 민간단체들이 맨발로 뛰는 걸 보며 ‘뭔가 거꾸로 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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