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미군 구금시설에 수감됐다 풀려난 이라크 여성들이 정묘(1627년)·병자(1636)호란 때 오랑캐에게 끌려가 고초를 겪고 귀국한 뒤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버림을 받아야 했던 조선의 '환향녀(環鄕女)'신세가 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14일 미군에 잡혀있다 풀려나 영웅 대접을 받는 이라크 남성과는 달리 여성들은 이방인의 손에 붙잡혔다는 사실 자체가 치욕으로 간주돼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따돌림 당하고 쫓겨나거나 심지어 살해당하는 일까지 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전 발발 후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등 주요 구금시설에 수감됐다 풀려난 여성은 92명이며, 이외에도 수십명에서 수백명의 여성들이 미군의 임시 수용시설에 수감됐던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학대 사례는 미군 헌병의 여성 수감자 성폭행 1건과 여성 수감자들의 나체 사진 촬영 등이 고작이다. 피해사례를 수집해온 대학교수와 변호사들은 "이라크의 가부장적 악습은 여성 수감자들에 대한 미군의 학대 실상이 제대로 공개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폭행 등 피해를 공개한 여성은 아직 없다. 이들을 면담해온 한 이라크인 교수는 "피해 여성들은 폭행과 욕설, 찬물 끼얹기 등의 가혹행위에 대해서는 털어놓았지만 성폭행을 당했는지에 대해 물어보면 모두가 두려움에 떨면서 부인했다"고 말했다.
이는 폭로 후 닥칠 끔찍한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는 다른 이슬람 사회처럼 여성이 정절을 지키지 못할 경우 '명예살인' 등 가혹한 처벌이 내려진다.
명예살인은 시집간 여성이 바람을 필 경우 친정 식구들이 여성을 살해하는 풍습이다. 실제로 이라크 이슬람 성직자연합회는 "남성들이 석방된 아내 또는 딸을 살해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일부 성직자들에게 요청한 적이 몇 차례 있었으나 이를 금지했다"고 전해, 가족들의 여성 수감자 학대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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