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 정보위원회는 지난 9일 이라크 전쟁은 조지 W 부시 정권이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왜곡·과장된 정보를 근거로 수행한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수만 명이 살상되고 천문학적인 전비를 투입하고도 아직 해결이 요원한 21세기 인류 최대의 비극이 단지 정보 수집 및 분석 미숙, 한마디로 '실수에 의한 결정'이었다고 너무나 허무하게 시인한 것이다.선진국 정보기관의 전지전능한 정보 수집 능력에 길들여 있던 보통사람의 시각으로는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 결정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의 실마리를 풀 수가 있다.
어느 나라나 외교정책의 결정에는 대상국에 대하여 공식, 비공식 정보채널을 통해 수집한 정보들이 1차적 판단의 근거가 된다. 이번 사건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중앙정보국(CIA)이 이러한 정보 수집에 1차적 통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정보 수집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수집된 정보의 분석 및 이를 바탕으로 한 올바른 외교 정책의 수립이다. 국가 정보 운용의 2차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외교정책 수립 과정에서는 '현명함'이 필수 요건이다. 현명함은 1차 정보들의 유용성 여부 등을 판단하고 합리적인 정책 결정을 이끌어내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리적 외교정책 결정에는 정보 분석 기술과 아울러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이 필수적 요건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계획, 수행 및 후속 처리 과정에서 이러한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가동하는 데 중대한 오류를 범하였고 그것이 기초적 정보 판단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쳐 사태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몰고 간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 수행 과정에서 네오콘(신보수파)의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수용했다. 만일 국내 및 국제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좀 더 귀를 열고 국제법의 원칙과 절차에 입각해 여론몰이가 아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통해 이라크 문제를 다루었다면, 이렇게까지 어처구니없는 결과는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9·11 이후, 미국 사회의 '견제와 균형'시스템은 마비되다시피 했고 물리적 보복 이외의 어떠한 가능성도 열린 자세로 검토하지 않았다.
미국 지식인 사회의 논의도 국제사회에 대해 미국의 현실적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방법에 관한 것에 그쳤고, 설사 전쟁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있다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무시되곤 하였다. 이라크 문제와 관련한 미국 사회의 총체적인 비민주성은 그들의 강점인 조화와 균형의 원리를 파괴했고 정보를 정책결정자의 이해에 맞게 무수히 변형시키는 기형적 외교정책 결정 구조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정확한 정보 분석 및 합리적 외교정책 결정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정치 시스템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 핵 문제, 이라크 추가 파병 등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너무 폐쇄적인 마인드와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들을 다룸에 있어서 미국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를 너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어느 나라건 정보를 제공할 때는 이미 자국의 이해에 맞게 채색된 상태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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