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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농민이 반대하는 '농협법'

입력
2004.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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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법 개정안이 확정돼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농협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관계 전문가들이 주축이 돼 개정안을 마련, 지난달말 정부안으로 확정했다. 이 개정안은 사상 초유의 민간 주도적 개혁법안이란 자평에도 불구하고 농업인들은 물론 학계로부터 거센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이들은 농협법 개정안이 경쟁력 강화 중심의 개혁에 치중한 나머지 조합원의 복지 및 지위 향상이라는 협동조합 본래의 취지와 목적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농업인들이 더욱 답답해 하는 것은 문제 투성이의 개정안이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는데도 전혀 이슈화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워낙 굵직굵직한 뉴스거리가 많아서인지 언론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의원들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농협을 아는 지인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왜 이런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개정안대로 통과되면 농협은 죽는다는 절망감이 팽배해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농협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개정안은 전문화 규모화 기업화를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농협중앙회의 전문화를 위해 이사회기능을 강화하고 사외이사의 참여폭을 2분의1로 확대했다. 대표이사에게 간부 인사권도 부여했다. 또 전문경영인(CEO) 영입 확대, 선관위에 조합장 선거관리 위탁, 외부 회계감사 의무화, 자율합병을 위한 조합간 경쟁 유발 등을 핵심내용으로 담고 있다.

언뜻 농협의 발전을 위한 조치들로 보이지만 뒤집어보면 개정안은 자주적 협동조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윤 극대화를 통해 농협이라는 이름의 전국규모 기업을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농협이라는 조직을 경쟁력만으로 존립 근거를 찾겠다는 발상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이는 농협법 제1조에 명시돼 있는 '자주적 협동조직을 통해 조합원의 경제·사회·문화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는 근본을 흔드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외부 전문가 영입으로 도움을 얻는 것은 좋지만 독점적 경영권을 쥘 경우 이윤극대화에만 몰두한 나머지 돈 안 되는 사업을 포기하게 돼 조합원들에게 봉사하는 조직으로서의 기능이 사라질 것이라는 지적이나, 조합원이 농협의 이용자가 아닌 투자자로 전락해 결국 조합원 자조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설득력이 있다.

협동조합은 민주주의의 학습장으로서도 가치를 갖고 있다. 농민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해주는 일과 함께 동등한 자격의 조합원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협동조합을 공동 운영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익히게 한다. 일부 조합장선거에서 물의가 빚어졌다고 선거관리 자체를 선관위에 위탁하는 것은 협동조합의 민주주의 교육기능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외부 회계감사 의무화도 농협의 자기관리 자기책임의 원칙을 해칠 우려가 크다.

정부는 농협을 키우겠다는 의지에서 선진국의 성공사례를 참고한 개혁적 시도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대다수 농업인들은 농협 육성보다는 농협 파괴를 위한 처방이라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갖고 있다. 농업개방 시대에 농협마저 경쟁력원칙만을 추구할 때 경쟁력 확보가 어려운 대다수 농업인들은 농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 정도로 반대가 심하다면 정부나 국회가 이 개정안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그 동안 농협법이 17차례나 개정되었지만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이 재대로 반영된 적이 없었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참여정부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다시 농협 개혁요구가 나올 것이라는 농민들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진실로 농민을 살리고 농협을 육성하겠다면 협동조합 설립 취지와 원칙부터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방민준 논설위원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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