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더왕 전설은 조잡한 동화에서부터 난해한 형이상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통로로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장 마르칼의 ‘아더왕 이야기’인가.책을 번역한 김정란(시인) 상지대 교수는 “숱한 작품들이 있지만 아더왕 전설의 원형과 본질에 닿아있는 작품은 귀하다”며 “장 마르칼의 책은 신화와 동화의 각종 차이들을 아우르며 그 속에서 일관성을 유지한 드문 책”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말한 전설의 원형은 다름아닌 켈트 문화다. BC 600년 북아일랜드를 중심으로 형성돼 스페인 북부와 체코 프라하까지 약 1,000년 동안 영향력을 발휘했던 로마 이전의 유럽, ‘로마적 유럽’에 맞서는 ‘잊혀진 유럽’이라는 의미다. “중세 교회권력이 종교적 상징에 정통했다면, 아더왕은 사라졌거나 지금과는 판이한 내용이었을 것이고 그 전설의 전승자들은 마녀사냥에 희생됐을 겁니다.”
그에게 아더왕 전설은 기독교의 외양에 켈트의 내면을 담은 이야기이다. 켈트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더왕의 서사적 쾌감은 즐길 수 있어도 그 속살을 들여다보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그에 따르면 켈트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다원적ㆍ탈근대적 세계관’이다. “기독교 문화의 원형으로서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몇개의 원리로 정돈된 합리적 공간으로 권위를 독점한 최고의 신이 존재하지만, 켈트의 신화에는 위계가 없습니다.”
아더왕 시대의 원시공화제적 국가형태는 유럽연합(EU)의 원형적 형태로 이해된다. 그는 프랑스 등 서구사회가 켈트문화에 대한 복원을 시도하고,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주목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 즉 대륙의 영적 시원을 찾아 회복하려는 노력으로 풀이했다.
켈트와 아더왕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는 ‘여성관’. “켈트 신화 속 여신들은 희랍신화의 장식품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켈트의 공간에서는 여성의 성적욕망도 억압당하기는커녕 오히려 주도적인데, 아더왕의 전설 속 여성들도 성적인 면에서 남성들을 이끈다. 그는 “월트디즈니가 켈트의 시각으로 ‘미녀와 야수’를 영화화한다면 아마 ‘미남과 야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적 재미 혹은, 아더왕 전설의 질긴 생명력과 관련해서는 “아더왕 전설이 성공한 자의 신화가 아니라, 실패한 영웅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같은 심리적 애절함이 침략당하고 지배당해온 대중들에게 오래 각인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켈트문화는 긴 세기동안 이어져 온 그리스ㆍ로마신화와 기독교적 세계관의 편식을 극복하고 다원적이고 탈근대적인 세계관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97년 ‘람세스’의 번역자로 주목을 받았던 그는 연내 이 소설 번역을 끝내고, 켈트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해설서를 쓸 계획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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