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정기권도 승차 거리가 길수록 더 비싼 것을 사서 갖고 다녀야 하고, 정기권을 사용할 수 있는 구간도 정기권 금액범위 내로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철도청은 15일 "지하철 정기권에 거리비례제를 적용해 연말까지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하기로 서울시와 합의했다"며 "형평성 등을 고려해 정기권도 이용한 거리만큼 요금을 내도록 요금제를 개편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철도청과 서울시는 이 방안 등에 대해 다음주 중 세부협의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방안은 서울시가 당초 발표한 '정기권 전 구역 무제한 사용'과는 배치되는 것이어서 이용객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거리별로 정기권 요금 달라진다
정기권을 거리비례제로 운영하려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전체를 거리별로 구획짓는 일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일단 어떤 기준에 따라 구간거리가 나뉘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철도청은 현행 일반요금의 거리비례제 골격을 그대로 살리는 대신 10% 할인을 적용하는 방안을 시에 제시한 상태다. 현재 거리구별 없이 전 구간 3만5,200원에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을 새 교통체계에 맞춰 12㎞ 기본거리 이내 구간과 이후 6㎞ 늘어날 때마다 12㎞∼18㎞, 18㎞∼24㎞, 24㎞∼30㎞ 구간 등으로 나눠 요금을 차등화하는 방안이 철도청의 구상이다.
현행 정기권 요금 3만5,200원은 주5일 근무제 시행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 기본거리 내에서 왕복 출퇴근 시에만 지하철을 이용한다는 가정 하에 1일 왕복 지하철 요금 1,600원에 한 달 근무일수 22일을 곱해 산출한 금액이다. 철도청은 이 공식을 그대로 적용한 후 10%를 할인, 현재 요금이 800원인 12㎞ 이내 구간은 3만1,680원(800원갽2회갽22일갽0.9), 900원인 12㎞∼18㎞ 구간은 3만5,640원(900원갽2회갽22일갽0.9) 식으로 책정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기춘 서울시 교통기획단장은 "정기권 요금을 철도청 안대로 바꿀 경우 실질적 요금 인상이 된다"며 "현재로선 어떻게 요금체계를 손질할지 백지상태지만 철도청의 안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특정구간에서만 사용가능
거리에 따라 차등화된 요금이 부과되면 요금거리를 넘어서는 구간에서는 정기권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현재처럼 서울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출발지와 도착지를 특정해 그 구간 이내에서만 쓸 수 있게 되는 것. 박태현 철도청 광역철도본부 과장은 "정기권은 본래 특정 구간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직장인이나 학생들을 위한 '통근패스'이지 아무데서나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프리패스'가 아니다"며 "서울시가 정기권 거리비례제에 합의한 만큼 구간외 사용제한을 관철해낼 것"이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무제한 정기권'에서 '60회 사용제한'(8월부터)으로 바뀐 지 얼마 안 돼 사용구간까지 제한되면 이용객들의 반발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정기권구입 70%가 장거리승객
서울 지하철 정기권이 외곽으로 갈수록 판매가 늘고, 도심에 가까울수록 판매가 적어지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15일 서울지하철공사(1∼4)호선과 도시철도공사(5∼8호선)에 따르면 14일 오후 6시부터 이날 오전까지 판매된 지하철 정기권은 약 3만5,000장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도심 4대문밖 외곽지역에서 팔린 정기권이 전체 판매의 70%를 차지, 할인혜택이 큰 장거리 이용자 위주로 판매가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지하철공사 관계자는 "4대문밖 지역과 시내 중심지 판매 비율이 7대3 정도 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도심에서 가까운 단거리 출근자들보다 할인 혜택이 많은 장거리 이용자들이 많이 구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기권 시행 첫날 출근길 혼란은 없었지만 일부 역에서는 정기권을 사용할 수 없는 경지역 승객과 역무원간에 실랑이가 빚어졌다. 구로역에서 타 안양역에서 내린 승객 황상우(51)씨는 "지하철 정기권이 철도청 구간에도 적용되는 줄 알고 정기권을 샀으나 정작 내릴 때는 추가 요금을 받아 황당했다"며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수시로 뒤바뀌는 교통 정책에 신물이 난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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