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위기 이후 10년 간 유지돼온 '주적'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게 될까.정부가 '주적' 개념에 발목이 잡혀 2001년부터 발행이 중단된 국방백서를 오는 10월께 발간하면서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했던 기존 표현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시행까지는 아직 고비가 많다.
정부는 남북 화해시대가 정착돼가고, 주적 개념으로 인해 소모적인 논란이 빚어지고 있으며,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백서에 주적을 명시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 이 같은 방침을 정했다. 주적 삭제 방침이 전해지자 진보진영은 "낡은 남북대결주의적 유물을 청산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보수진영은 "북한의 위협이 여전한 상황에서 안보의지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이 문제는 국회에서도 계속 논란이 될 것으로 보여 주적 개념의 삭제가 실제로 이뤄지려면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백서를 발간하는 주무부처인 국방부는 "주적 표현이 빠진다고 해서 실체적인 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장병 정신교육을 강화해 대적관을 확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방부는 일단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지를 검토 중일 뿐 현재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주적 문제로 또다시 보혁갈등이 촉발될 가능성을 우려한 때문이다.
1988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국방백서에 주적이라는 표현이 처음 담긴 것은 95년. 94년 3월 국방부가 사회주의 진영 몰락에 따라 국방백서 가운데 국방목표의 '적의 무력 침공'이라는 부분을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 수정하자 보수진영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어 94년 북한의 '불바다 발언'과 북핵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국방부는 95년 판에 '주적인 북한'이라는 표현을 처음 포함시켰다. 그러나 진보진영에서 주적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국방부는 매년 발간해오던 백서를 2001년부터 격년제 발간으로 바꾼다고 발표한 뒤 그 해 발간하지 않았고 2002년에도 발간을 보류했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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