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패러디 사진 게재 파문을 계기로 여야 각 당의 홈페이지를 포함한 정치 관련 사이트에 오르는 패러디물의 저급함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특히 각 정당이 이 같은 저급 게시물을 퇴출시키기는커녕, 도리어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인터넷과 디지털카메라의 확산, 대선과 탄핵 등 대규모 정치이슈의 부각 등으로 활성화하기 시작한 정치 패러디의 본질은 현실에 대한 신랄한 풍자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사이버 공간을 뜨겁게 달궜던 '탄핵의 제왕', '탄핵마불' 등은 네티즌들이 현실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 바로미터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패러디 문화의 진원지격인 디시인사이드(dcinside.com)를 비롯, 라이브이즈닷컴(www.liveis.com), 미디어몹(www.mediamob.co.kr), 짱노닷컴(www.zzangno.com), 조은나라닷컴(www.okjoeunnara.com) 등에 올라온 일부 정치인 패러디물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거나 이념적 대립을 부추기는 식으로 변질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각종 게시판에는 "청와대가 고생 많다. 주인이랍시고 별 X 같은 게 들어앉아 있으니", "한나라당은 완죤 썩었겠네. 대통령 무시하는 쫄따구 X 때문에" 등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표현들까지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같은 패러디와 글이 삭제되거나 관리자에 의해 제재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박 전 대표의 패러디물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직후 '조은나라닷컴'에 노 대통령을 등장시켜 색깔론을 유발하는 패러디가 게재되는가 하면, 서프라이즈(www1.seoprise.com)에는 박 전 대표를 비하하는 또다른 유사 패러디가 올라왔다.
심지어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의원은 당 홈페이지에 "한나라당은 작년에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을 뽕 맞고 몽롱한 상태에서 통과시켰으니, 후회하고 반성한다고 사과하라"는 글까지 올렸다. 친 한나라당 성향 사이트인 조은나라닷컴 관계자는 "순수 네티즌이 패러디물을 올리고 있긴 하지만, 당은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문화연대 이원재 간사는 "풍자는 시대정신의 반영인 만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단언하면서도 "대중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정치권이 은근 슬쩍 활용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략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에 올려진 박 전대표의 패러디물이 초기 화면으로 옮겨지기 전에 이미 사이버 공간에서는 노 대통령이 반라의 여자로, 홍사덕 전의원이 나체로 등장한 경우가 있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박근혜 패러디 파문" 공방… 민노, 자제 촉구
한나라당은 15일 박근혜 전대표 패러디 파문과 관련, "인면수심의 패륜적 인격 모독" "야당 대표를 발가벗겨 망신 주는 게 상생이고 개혁이냐" 등 원색적 용어를 총동원해 이틀째 파상공세를 폈다. 특히 "대통령의 일개 참모의 떨떠름한 사과 정도로 덮고 넘어갈 수 없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와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에 대한 문책을 거듭 촉구했다.
김덕룡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 지도자 모독 사건을 실수로 치부하고 대충 넘기려는 이 정권의 도덕수준은 아주 천박하다"며 '재미나는 골짜기에서 범 난다'는 속담을 인용, "나쁜 일에 재미를 붙이면 결국 화를 당한다는 뜻인데 이 정권에 딱 어울리는 경고라고 본다"고 목청을 높였다.
김형오 사무총장은 "정치적 테러이자 패륜 범죄인 이번 사건에 대해 어제 이해찬 총리가 몰지각한 답변으로 일관한 것을 보면 청와대는 도덕과 양심을 상실한 집단"이라고 공격하면서 대통령 사과와 청와대 홍보수석 문책을 요구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논평에서 "스크린과 스포츠, 섹스라는 구시대 독재정권의 '3S' 천민화 정책이 현 정권에서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며 "저주의 굿판은 다름아닌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비꼬았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이번 쓰레기 패러디 파문은 정부·여당의 끝없는 실정과 무능, 내분으로 인한 불안심리가 빚어낸 예견된 수순의 불상사"라면서 "청와대의 수준과 품격이 그대로 반영된 일인 만큼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선, 전재희 의원 등 한나라당 여성의원 16명은 성명을 내고 대통령의 사과와 홍보수석 및 국정홍보비서관 파면을 요구하는 한편 "여성부는 남녀차별개선위의 직권으로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열린우리당은 이번 사태가 더 이상 정치쟁점화 하는 것을 경계, 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김현미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우리가 미안하다고 할 때 그만하는 절제의 미를 보이라"고 말했고, 임종석 대변인은 "대통령의 사과 요구는 지나치다"고 선을 그었다.
민주노동당은 한발 짝 물러서서 양당의 자제를 촉구했다. 박용진 대변인은 이날 "박 전대표는 거대 야당의 유력 대권주자답게 넓은 아량을 발휘, 쓴 웃음 한번으로 넘어가고, 청와대는 정중한 사과와 담당자 문책·재발방지 약속을 했으면 진작 끝났을 일"이라며 "어려운 경제상황에 짓눌린 국민들의 삶은 패러디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