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발표된 '아파트 분양가 공개 방안'으로 아파트 분양가격이 내려갈 수 있을까.건교부는 채권입찰제 및 원가연동제 적용을 받는 분양가 주요 항목비 공개 대상 아파트가 연간 주택건설물량(약 50만 가구)의 15∼20%인 8만∼10만 가구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분양가가 하락할 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망이 엇갈린다.
분양가는 하락, 주택 질도 저하
이번 조치로 공공택지에서 공급하는 전용면적 25.7평 이하 중소형 아파트의 분양가는 10% 정도 내려갈 전망이다. 반면 25.7평 초과 아파트의 경우 채권입찰제와 함께 공영 아파트에 대해서만 분양원가의 주요 항목이 공개돼 인하 효과가 별로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 서울시 SH공사(구 도시개발공사)가 마포 상암지구에서 내달 분양 예정인 40평형 아파트는 분양가가 크게 낮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그간 고급화 추세였던 아파트의 질 저하는 불가피해 보인다. 분양업체들이 소비자들을 의식, 가급적 공개원가를 낮추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분양가 자율화 이후 업체들이 웰빙과 친환경 소재, 첨단 시스템 설치 등 고급화 경쟁을 벌였으나 이제는 오히려 값 낮추는 경쟁을 하게 됐다"며 "아파트 고급화 추세가 끝나고 10년 전 수준으로 아파트 질이 후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가공개 검증 절차 미흡
이번 당정 합의에도 불구하고 분양원가가 낱낱이 공개되는 효과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민영아파트가 공개 대상에서 제외된 데다, 공영 아파트의 주요 비용 공개 항목도 포괄적으로 명시됐기 때문이다. 건축비의 경우 공사비와 관리비, 부대비용 등으로 좀 더 세분화해 공개하지 않을 경우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업체가 제시한 분양원가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절차가 없어 공개한 자료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도 흠으로 지적된다. 건축비 항목 중 공사비의 경우 업체들이 토목, 전기, 조경 등 공종별로 하도급을 주지만 장부상에는 하도급 비용이 아닌 원비용으로 적는 게 업계의 관례다. 건교부 관계자는 "원가공개로 아파트 공급 축소가 우려되는 만큼 기업의 최소한의 경영비밀을 보장해 준다는 차원에서 공종별 비용 공개는 어렵다"고 말했다.
부동산 114 김희선 전무는 "공공아파트와 같은 택지에 들어서는 민영아파트는 분양가 인하 효과가 있겠지만 채권입찰제로 택지비가 상승되는 중대형 평형은 오히려 분양가가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 주요내용
당정이 마련한 아파트 분양제도 개선안은 공공택지에서 분양하는 아파트에 대해서는 '공공성'을 인정, 분양가를 사실상 규제하겠다는 게 골자다.
당정은 우선 공공택지 내 전용면적 25.7평 이하 공영아파트와 민영아파트에 대해서는 지금처럼 택지를 감정가격으로 공급하되, 분양가의 적정 상한선을 규제하는 원가연동제를 실시키로 했다. 또 시민단체의 원가공개 의견을 수렴해 민간과 공공기관을 가리지 않고 25.7평 이하에 한해 택지비, 건축비, 설계감리비, 옵션비용 등 분양가 주요 항목의 비용을 의무적으로 공개키로 했다.
이와 별도로 공공택지에서 분양되는 전용면적 25.7평 초과 아파트에 대해서는 택지 공급 때 채권입찰제를 적용키로 했다. 채권 입찰제가 도입되면 업체들의 토지 구입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업체가 과도한 이익을 남기기 어렵게 된다. 25.7평 초과 아파트의 분양원가 공개는 주공 등 공공기관의 경우 25.7평 이하와 마찬가지로 분양원가의 주요 항목을 공개토록 했다.
단, 민간기업이 공공택지 내에서 공급할 경우에는 택지가격만 공개하도록 규제를 다소 완화했다. 채권입찰제로 조성된 자금은 국민임대주택 등 서민 주택건설에 쓰이게 된다.
당정은 그러나 민간이 매입한 택지에서 자체적으로 분양하는 민영아파트는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분양원가 공개나 원가 연동제들의 규제 조치를 일체 적용 받지 않도록 자율화를 보장했다.
한편 당정은 원가공개의 핵심인 표준건축비 산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새 표준건축비 산정 과정에 전문가, 시민단체 등을 참여 시키기로 했다. 또 기업의 영업기밀과 원가절감 노력을 저해하지 않도록 공개 항목 규칙 제정 때 이해 당사자인 업계 의견도 수렴키로 했다.
/송영웅기자
■업계 "시장경제 위배"
14일 아파트 원가연동제와 분양원가 주요 항목 공개방침이 알려지자 건설업계는 "자유시장경쟁원리를 부정하는 처사"라고 강력하게 반발하며 시장위축을 우려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택지를 감정가로 공급하되 분양가를 표준 건축비와 연계하는 원가연동제만으로도 현재보다 20∼30% 인하 효과가 있다"며 "분양원가 공개는 자동차의 부품값을 모두 공개하라는 말과 같은 것으로 시장경제원리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일 화성동탄지역 공공택지에 지어진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 원가가 공개되면 민간업자들이 그 주변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할 수 있겠느냐"고 부동산시장 위축을 우려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박사는 "대한주택공사가 앞으로 집을 지을 수 있는지 지켜 봐야 할 것"이라며 "건설경기 연착륙 대책을 발표하고 일주일도 안돼 개발이익환수제로 재건축을 막고, 분양가원가 공개로 공공택지 개발을 막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또 "공개해야 할 세부항목을 결정하지 않고 미룬 것은 또 다른 논란의 불씨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부동산제도개혁팀 문혜진 간사는 "분양원가 공개의 가장 큰 원칙은 주택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이나 민간, 평형을 구분하지 않고 공공택지에 짓는 모든 아파트의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25.7평 초과 민간아파트를 제외한 것은 핵심을 뺀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간사는 "정부와 우리당이 주택 공공성 확보를 위한 방향성을 제대로 잡지 못해 나온 결과"라며 "그나마 공공택지내 25.7평 이하 아파트의 원가연동제와 원가 항목 공개는 그나마 올바른 결정"이라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계급장 떼고" 체면세운 黨 /盧대통령 반대 불구 절충안 강행
열린우리당이 절충안이긴 하지만 사실상의 '원가공개'란 강수로 당·정·청간 뜨거웠던 논란을 일단 매듭지었다. 노무현 대통령조차 공개적으로 반대한 원가공개를 천정배 원내대표가 '계급장 떼고' 밀어붙여 얻어낸 결과라는 것이 중론이다.
분양원가 공개논란은 총선후 당·청간 대립과 혼선의 도화선이 됐던 사안. 한달 보름동안 수 차례의 뒤집기가 이어지며 당과 정부, 당과 청와대, 당 내부간 줄다리기가 팽팽하게 펼쳐졌다. 우리당이 당초 원가공개 검토 방침을 총선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지난달 1일 당정협의에서 홍재형 정책위의장이 원가연동제를 택하는 대신 공개 불가 쪽으로 가닥을 잡자 "개혁후퇴" "서민과의 약속을 배신한 정당" 등 시민단체와 개혁 지지자로부터 각종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가 곧장 '공약 백지화'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달 9일 노무현 대통령이 "원가 공개는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를 분명히 했다. 이헌재 부총리 등 행정부도 공개 불가 방침에 가세했다. 하지만, 신 의장과 천 대표는 '원가공개'란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급기야 김근태 의원이 지난달 14일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며 청와대를 정면으로 겨냥, 한 때 당·청간 긴장감이 고조됐다.
당정협의를 통해 합의해야할 사안으로 정리되면서 논란은 잠복했지만 건교부와 당 뿐 아니라 당 내부간의 논쟁이 치열하게 이어졌다. 천 대표와 홍 의장 사이에서도 상당한 의견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와중에서 경제적 파장을 최소화 하면서도 분양원가 공개 효과를 보자는 선에서 절충이 이뤄졌다. 당 관계자는 "건교부의 거센 반발에도 천 대표가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전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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