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스페인 출신의 화가 피카소는 잘 안다. 구 소련 지도자 후르시초프에 따르면 '피카소는 배꼽이 있어야 할 자리에 눈을 그려넣는 화가'였기 때문이다. 우리 화가 중에는 박수근과 이중섭을 비교적 먼저 떠올린다. 두 사람의 삶은 퍽 대조적이다. 박수근은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단순투박한 선묘로 전형적 서민의 삶을 진실되게 그렸다. 반면 이중섭은 사랑과 결혼, 작업에서 열정적이었고 개성으로 빛났다. 공통된 것은 두 화가의 생애가 일제시대와 6·25전쟁으로 얼룩졌으며, 때이른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시대적 궁핍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사후 국가경제가 좋아지자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들의 그림 값이 천정부지로 뛰자, 그들이 남긴 그림들도 어느 결에 뿔뿔이 흩어졌다. 1990년대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고, 그들의 고향이나 연고지는 뒤늦게 명장(名匠)들을 기념하고자 했다. 박수근 고향인 강원 양구군은 박수근미술관을 열었다. 그러나 허전할 뿐이었다. 벽에 걸린 작품이 모두 복사본일 뿐 원화는 없었다. 지자체의 빠듯한 살림으로는 그들 스케치북에 그려진 습작 한 점도 구할 수 없었다. 제주 서귀포시가 북한 출신 이중섭의 피란살이를 기념해서 세운 이중섭미술관도 그러했다.
■ 부끄러운 문화의 현주소였다. 이 안타까운 문제를 해결한 것이 화랑 경영자들이었다. 지난해 가나아트센터 이호재 대표가 피란살이 때 서귀포 바닷가에서 게를 잡아 먹으며 연명했다는 이중섭을 위해 그림을 기증했다. 이중섭의 회화 10점과 박수근 장욱진 등 그와 가깝게 지냈던 화가들의 작품 68점이다. 최근에는 갤러리현대 박명자 대표가 이중섭 도상봉 백남준 등의 작품 54점을 기증했다. 이번 기증으로 소장품이 부족해서 1급 미술관으로 등록하지 못했던 이중섭미술관이 거듭 태어났다. 기증작들이 출품된 '이중섭에서 백남준까지'전이 15일부터 연말까지 열린다.
■ 양구 박수근미술관에서는 8월31일까지 '박수근과 그 시대 화가들'전이 열리고 있다. 박명자 대표가 기증한 박수근의 유화 '굴비'와 김환기 이중섭 등 36명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화상(畵商)들이 척박한 시대를 불우하게 살다간 화가들을 기념하기 위해 화폐로 환산할 수 없는 큰 보은을 한 것이다. 우리 문화도 확실히 성숙해 가는 모양이다. 사후의 일이지만, 어찌 보면 두 화가는 행복하다. 비운의 조각가 권진규를 떠올린다. 누군가 '인생은 공(空)'이라는 처절한 유서를 남기고 작업실에서 목숨을 끊은 그를 기념할 차례인 것 같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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