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투자부진은 신산업에 대한 투자가 한국판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죽음의 계곡이란 벤처기업이 펀딩도 힘들고, 설령 제품을 내놓더라도 매출이 없어 고사 확률이 높은 상황을 말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4일 '투자부진 장기화 가능성과 해법'이라는 보고서에서 "현재 투자부진은 경기침체 때문보다 경제 구조적인 문제에 더 크게 기인한다"며 "때문에 이 같은 투자부진이 장기화, 한국경제의 장기침체를 초래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우선 기존 주력산업들은 전반적인 과잉설비로 인해 추가적인 투자확대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자동차산업은 현재 세계적으로 초과 생산능력이 1,500만대 이상에 이르며, 국내에서도 1990년대 중반부터 대체수요가 신규수요를 상회해 왔다. 석유화학제품도 세계적 초과 공급규모가 20%를 넘고, 반도체는 2005년 이후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2006년에는 공급과잉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휴대폰은 중국시장에서 가격인하 경쟁이 격화하는 등 공급과잉이 가시화하고 있다.
결국 국가적 투자확대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신산업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연구소는 그러나 대기업의 신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는 자력으로 원천기술을 개발해서, 없는 시장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초기 벤처기업과 같은 죽음의 계곡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과거 자동차와 반도체와 같이 후발로 뛰어들긴 했지만 분명한 세계 선발주자가 있어 '따라잡기'(catch-up)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던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기술경쟁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물건을 내놓으면 시장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브랜드력도 취약한 상황이다.
연구소 홍순영 상무는 "이제 새로운 투자가 성공할 확률은 과거보다 더 낮아졌고, 이는 우리나라 산업이 성숙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면서 "죽음의 계곡을 뛰어넘었던 일본을 벤치마킹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처럼 한국도 상업화 리스크가 큰 신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물건을 사줘서 초기 시장을 형성해 주는 동시에, 연구개발에 대한 과감한 지원으로 기업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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