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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올림픽 D-30/이봉주 "월계관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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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올림픽 D-30/이봉주 "월계관 기다려라"

입력
200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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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아테네 올림픽(8월13~29일)이 한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태극 전사들의 호흡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 144일간의 지옥 훈련을 성공리에 마치고 마라톤의 발상지 아테네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리기 위해 최종 담금질에 나서는 이봉주의 각오와 1992년 바르셀로나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가 띄우는 격려메시지를 함께 싣는다. /편집자 주

“2시간12분대에 들어와 승전보를 알리고 꿈에 그리던 월계관을 쓰겠습니다.”

차분했지만 의지만은 단호했다. ‘국민마라토너’ 이봉주(34ㆍ삼성전자ㆍ2시간7분20초). ‘봉달이’이란 애칭으로 불릴 만큼 마라톤 금메달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을 터. “국민의 염원을 잘 압니다. 오히려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강원 횡계 고지훈련을 마치고 13일 경기 화성 삼성전자육상단에서 만난 이봉주는 “아테네의 마라톤코스처럼 훈련도 반환점을 돌아 막바지 오르막길에 서있다”고 했다.

무려 144일이다.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8분15초(5위)로 올 시즌 마라톤 10걸에 당당히 이름을 내건 이봉주는 4월 6일부터 본격적인 아테네올림픽 준비를 했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의 42.195㎞’로 불리는 아테네올림픽 코스는 인류가 40㎞가 넘는 그 머나먼 거리를 뛰고 또 뛰게 만든 역사의 현장이다. 기원전 490년 그리스 병사 필리피데스는 페르시아대군을 물리친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마라톤 평원을 내달렸다. 그는 “우리가 이겼다”는 소식을 알리자 마자 죽었으되 그의 한마디는 아테네 시민에게 희망을 주었다.

108년의 여정을 거쳐 귀향한 이번 아테네올림픽 마라톤 경기가 어느 대회보다 뜻 깊은 것도 역사의 현장에서 승리하는 자가 역사의 새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이봉주 역시 “내 나이보다 하나 모자란 서른세번째 마라톤 풀코스 도전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레이스, 꼭 금을 따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래서 훈련도 철저하게 아테네 코스에 맞춰 진행됐다. 4월 6일 첫 훈련지를 충남 유성 계족산으로 잡은 것은 아테네 클래식 코스의 30~32㎞ 구간에서 최고조에 달하는 ‘마의 오르막길’을 대비하기 위한 것. 체력보강을 위해 크로스컨트리도 병행했다.

다음 훈련은 5월 1일 중국 쿤밍(해발 1,895m). 25일 동안 이봉주는 섭씨 35~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를 버틸 지구력을 쌓기 위해 고지훈련에 돌입했다. 마라톤 선수에게 산소 공급을 해주는 혈액 내 헤모글로빈 수치를 늘리기 위해 이봉주는 턱까지 차오르는 마른 숨을 참고 또 참았다.

오인환 감독은 “아테네의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선 뛸 때 파괴되는 헤모글로빈 수치를 얼마나 적절히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매순간 주저앉고 싶었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힘든 지옥훈련, 성실하기로 천하에 소문난 이봉주라고 왜 힘든 기간이 없었을까.

지난달 3일부터 40일 동안 계속된 횡계 훈련은 절정이었다. 옛 영동고속도로에 펼쳐진 오르막 내리막길을 매일 38~40㎞ 달렸다. 오 감독은 매정하게 차량으로 뒤를 쫓으며 이봉주에게 “무릎을 더 올리라”고 다그쳤다. 오 감독은 “횡계 훈련으로 체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실전에선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봉주는 “집에 있는 아내와 아들 우석이, 무엇보다 아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둘째 아이(12월 출산 예정)를 생각하며 힘을 냈다”고 했다. 2002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첫째 아들이 준 선물이라고 믿는 그에게 둘째의 임신보다 더 큰 힘이 있을까.

그는 마지막 전지훈련을 위해 15일 이탈리아 브레시아로 출국한다. 시차 적응을 마치면 다시 해발 1,865m에 이르는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헤모글로빈 수치를 끌어올리는 최종 고지훈련에 돌입한다. 다음달 6일엔 그리스로 입성해 아테네에서 북쪽으로 100㎞ 떨어진 소도시 시바에서 적응훈련과 식이요법으로 결전의 채비를 갖춘다.

필승 전략도 짜놓았다. 가장 견디기 힘든 오르막길인 18~32㎞ 구간이 승부처다. 벌써 서른 중반에 접어든 이봉주에게 경계해야 할 대상은 체력이 탄탄한 20대 중반 신예들과 스페인 이탈리아 등 더위에 강하고 파워 레이스를 펼치는 유럽 선수들.

이봉주는 “경험은 제가 훨씬 많습니다. 준비를 철저히 마친다면 가능성은 충분하고 마라톤 인생을 걸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화성=고찬유기자 jutdae@hk.co.kr

■황영조가 보내는 격려 편지

1992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56년 만에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안긴 황영조(34)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이 지난 주 본사를 찾아 15일 전지훈련을 위해 출국하는 이봉주에게 애정어린 격려를 전했다. 올림픽 금메달 선배이자 '동갑내기'인 황 감독의 이야기를 편지형식으로 꾸몄다. /고찬유기자

<떠나는 봉달이에게>

고생이 많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너도 알다시피 마라톤은 준비하고 고생한 만큼 결실을 맺는 정직한 종목이잖아. 많은 국민들이 기대하듯이 나도 너의 금메달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마.

하지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2시간 4~5분대를 뛰는 선수들이 수두룩한 실정에서 7분대 기록을 가지고 있는 네가 1㎞ 이상 떨어진 레이스를 따라잡기는 수월친 않을 거야. 게다가 나이도 한계에 부딪혔지. 최근 올림픽 금메달이 20대 초ㆍ중반에서 나오는 추세라 부담이 많이 될 거야.

하지만 알지? 우승 후보가 언제나 금메달을 따는 것은 아니라는 거…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면 좋은 기회가 올 거야. 특히 넌 누구보다 성실하잖아. 묵묵하게 레이스를 펼치다가 무더위에 치진 앞 선수가 지쳐 제 풀에 퍼지면 그때 승부를 보도록 하는 게 좋을 거야.

단점은 본인이 가장 잘 아는 법이지. 나이를 오히려 전략으로 삼아. 체력은 떨어지지만 넌 수많은 경험을 통해 경기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아니까. 일단 20~32㎞ 구간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는 것은 너도 알 것이고 그때 5명 이내로 압축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 미리 치고 나가지 말고 너의 레이스 스타일처럼 성실히 뛰면 된다.

얼마 전 아테네 코스를 답사해봤는데 다른 유럽코스에 비해 우려했던 것보다 나쁘진 않더라. 무더위가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했으리라 믿어.

봉주가 금메달을 따야 한국마라톤이 계속 이어져 간다는 거 알지?

희망이란 게 있잖아. 더구나 그 희망은 너뿐 아니라 온 국민의 희망이잖아. 꿈은 이루어진다.

봉주야! 꿈을 가지고 있는 봉주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서울하늘 아래서 영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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