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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신혼의 추억 담긴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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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신혼의 추억 담긴 나무

입력
200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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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초 우리 부부는 결심을 했다. 매년 식목일에 집 앞에 나무를 하나씩 심자고. 시작은 거창했다. 실제로 신혼 첫해 식목일 벚나무와 감나무 묘목을 사서 3층 빌라 집 앞에 있는 화단에 심었다. 벚나무는 꽃을 보기 위해서, 감나무는 감을 따먹으려고.그러나 이런 결심은 으레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 다음해부터는 싹 잊어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 더 신경 써야 할 일이 끝도 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후 나무심기는 우리 부부의 관심 밖으로 멀리 사라졌다.

서울에서 어떻게 비벼 살아볼까 하며 버티던 우리는 인천으로 컴백하게 되었다. 서울의 집값 상승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인천 집으로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이사 날짜도 12월 초순이었다. 추운 겨울날, 우리 부부는 다시 인천에 상륙했다. 한동안 우울한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봄을 맞았다. 작년 일이다. 일요일날 바람이나 쐬러 집 밖을 나서던 우리 부부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 심어 놓았을 때는 1m도 채 안 되던 묘목이 어느새 훌쩍 자라 빌라 2층까지 올라간 것이다. 마치 재크의 콩나무를 보는 것 같았다.

순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어만 놓고 제대로 해 준 것도 하나 없는데 저 혼자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다니. 눈물이 핑 돌았다. 무심한 부모를 원망도 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라 준 녀석들이 고맙기만 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이사갈 때 장농이 걸려 걸리적거린다고 뽑아버릴 생각까지 했으니.

지금은 집을 나설 때마다 나무한테 인사를 한다. 잘 잤냐? 간밤에 별 일 없었지? 나? 나도 네 덕분에 잘 지내. 앞으로 잘해 보자고. 너도 힘내, 알았지? 예, 그럼요. 그런데 올 봄에는 가지나 좀 쳐주세요. 알았어. 임마.

후기―가지를 쳐 준다 쳐 준다 하다가 결국 못 쳤다. 그런데 어느날 경비아저씨가 곁가지를 싹 잘라 주셨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감나무는 아예 뽑아버리신 것이다.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 벚나무와 소나무에 가려 더 이상 자랄 수 없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 그래도 우리가 심은 나무인데…. 그 일 때문에 아내와 나는 한동안 우울했다. 기쁜 소식도 있다. 올 봄 벚나무는 드디어 꽃을 피웠다.

/cjh9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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